내 친구는 낡은 가방을 열고 희미한 촛불이 흩어지는 마루 위에 여러 가지 책을 꺼내놓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 이 나라에서 금지된 것들이었다.
마침내, 내 친구는 사진 한 장을 찾아내어 ‘이거야’ 하고 내 손에 얹어놓고는 조용히 또 창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쁘지도 않은 젊은 여인의 사진이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 ‘낡은 가방을 열고’ 전문) 김연수씨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예쁘지 않지만 나에게 휘파람을 불러일으킬 만한 한 여자의 사진 한 장' 이다. 그래 난 그거면 된다. 무언가 거창한 것을 원하는게 아니다.
내 감정에 충실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이건 인간이 누릴 당연한 권리인데 우린 그렇지 못하다. 어쩌면 이 세상 어느 때의 아무개 중 단 한 명도 그렇지 못하고, 못했다.
'젊은 여자의 사진'은 '금서들의 사이'에 숨어 있다. 세상이 그렇다. 내가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고. 내가 물리치고, 택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 들만 먼저 보인다. 그 것들이 '나를, 나의 이상을, 내가 원하는 것을 ' 가리고 있다. 난 정말 그 것들을 박차고 나아갈 힘이 없는 걸까...
원래 우리집이 중앙일보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역 후에 알았다.. 군인이라 집안일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런 더러운 신문을 우리 가족들이 읽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라 아버지께 왜 중앙일보를 구독하게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아버지 말씀이.. 가져다 달라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부터 집으로 계속 신문을 넣어주더니 그냥 귀찮아서 절독을 안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중앙일보를 몇 개월간 보게된 이유이고 구독료도 현재까지 내지 않았다고 한다. 중앙일보를 원래 좋게 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요즘은 조 중 동이 뭐라고 국민들을 우롱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몇일 읽어 보았는데 정말 화가나서 신문을 집어던진 것이 몇번인지 모르겠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내 돈 거금6만원을 들여 중앙일보를 절독하고 신문을 '이걸'로 바꾸었다.
한겨레! 정말 너만은 변하지마라. 지금 니 신문을 보는 내가 너무 자랑스럽다. 진짜 너 까지 변하면 나 이민갈지도 몰라. 누군가는 위선을 말해도 그 것이 더 달콤할지라도.. 너만은 진리를 따르고 어두운 곳을 비추고 정직한 소리를 내어주길..
무료한 오후에 이 책 저 책을 뒤지다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좋은 생각을 발견하고 나와 처지가 너무나 비슷한 글을 발견하여 소개합니다.
박인하 님/ 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교수
중학생이 되어 남성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지자 하루에도 몇 번씩 허황한 감 상에 빠지곤 했다.요즘 청소년들 처럼 자유롭게 남녀 교제를 할 때도 아니어서, 이성에 대한 열망은 연습장에 유치찬란한 연가나 짝퉁 로맨스 소설로 남곤 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며 사춘기의 열병은 진정되었고, 내가 써 놓은 연시와 로맨스 소설은 구석에 처박히고 말았다. 푸릋한 고교 1학년의 봄, 나와 상관없는 연례행사 쯤으로 생각했던 교내 백일장 이 열렸다. '어머니'란 주제에 대해, 얼치기 연시를 쓰며 갈고 닸은 실력으로 돌 아가신 어머니의 무덤에 꽃을 들고 들른다는 내용의 시를 완성했다. 물론, 어머니 는 멀쩡하게 살아 계셨다. 멸칠이 지난 뒤 아침 조회 시간이었다. 교내 스피커에서는 지난 백일장에서 상 을 수상한 학생들의 명단을 불러 주었다. 그런데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스피커에서 내 이름이 불린 것 이다. 1교시, 아니 2교시가 끝난 뒤였나, 교내 문예반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꾸벅 인사를 하고 다가선 나에게 선생님은 "시를 잘 쓰더구나. 좀 써 봤니?" 라고 물으셨다. 차마 중학교 시절 혼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동원한 연시를 썼다는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다. "아뇨. 별로 써 본 적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너도 문예부에 들어와라. 시화전에도 참가하고." 문예반 활동을 열심히 하지는 못했지만, 1학년 때 개최한 시화전에 시를 써서 참여했고 교지에 시도 한 번 발표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수상과 선생님의 칭찬은 글쓰기에 관심도 없던 평범한 고등학생을 문학 소년으로 바꾸어 버렸다. 스스로 호를 지어 자작 시집의 제목을 붙이는 유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지금 읽어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습작 시집은 고등학교 시절을 기념할 추억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물건이 되었다. 그리고 그 충만한 자신감은 자작 시집 만들기를 넘어 급기야 인생항로를 수정하기에 이르렀고, 신문방송학과나 역사학과를 가려던 계획을 바꿔 국문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 내내 시인을 자칭하며 열심히 시를 썼다. 시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날의 사건은 내 창조적 열정을 끄집어내는 중요한 계기였다.
나는 요즘 너무 행복하다. 사실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잘하지는 못하는 나이다. 생각은 많으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여 중구남방의 말과 글을 남발하는 나이다.
글을 잘 쓰고 싶었다. 글쟁이가 되어 먹고 살 것은 아니었지만 글을 잘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이 블로그를 만들었고 나는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이도 5달간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갔다.
처음에는 나의 글이 무시 당하는 것 같았다. 안스럽고 포기하고 싶을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대박을 꿈꾼 적은 없으나 걸음마에서 이렇게 오래 머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에게도 이 글의 지은이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수상과 선생님의 칭찬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었다.
내 글 중 '태왕이 공격한 서백제??'라는 글이 메타블로그 사이트인 블로그 코리아 첫 페이지를 장식하고 다음 블로그 뉴스 책이야기 가테고리에서 6위까지 오르는 영광을 차지했다. (사실이건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게다가 '글이 아니옵고 길이 옵니다.'라는 글은 알라딘 북 리뷰에서 10월 5째주의 당선작이 되면서 5만원이라는 내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상금도 받았다. (이건 평가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난 내글이 대중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글을 읽어 주고 또 추천해주고 것도 모잘라 댓글과 관련글 까지 걸어주는 넷티즌에게 감사한다.
누군가에게 나의 글이 스쳐지나 갈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글을 읽어주는 당신이 있어 또 이러한 작은 성과들에 힘입어 나는 글쓰기를 계속해서 사랑할 것이다.
이 글의 지은이처럼 인생항로의 수정까지는 못 가더라도 앞서 말한 이 이들은 내 창조적 열정을 마구마구 끄집어 내고 있다.
생각이 있는 글. 무의미하지 않는 글. 귀감이 될 만한 글. 사람들이 나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쓰기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에게 작은 인정을 준 여러분에게 감사하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
철학에 무지한 내가 철학적 사고 좀 해보겠다고 덤벼든 책에서 흥미로운 부분이있어 올린다. 책 제목은 '철학에 관한 10가지 성찰' (나이젤 워 버팅) 이다.
사람들이 철학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여 멀리하고 등한시한다고 생각한 작자가 철학의 대중성을 위해 만든 책이지 싶다. 사람들이 평소에 한번 쯤 생각해볼만한 소재를 철학적으로 풀이한 책이다.
예를들면.. 신은 존재하는가? 악은 왜 있는가? 예술의 범위는?? 등등이다. 나도 사실 현실적인 사람이라 이런거 가끔 쓸데없고 부질없다 느끼지만 간만에 몰두 해볼만 했던거 같다. 당신들도 한번 느껴보길.
여튼 파스칼의 내기는 신이 있다고 믿어야 할지 없다고 믿어야 할지에 대한 가장 가능성 높은 답을 찾는 것이다. 전제는 자신이 믿건 안믿건 신이 존재하고 존재하질 확률이 똑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의 존재 여부는 죽어서 안다고 가정하자. 여기서는 총 4가지 경우가 나온다.
① 신이 있다고 믿었는데 실제로 있을 경우. 자신은 신이 있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천국에 가게 될 것이고 신의 믿음에 따른 자신이 매우 자랑스러울 것이다.
사실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있는것은 당연한거 겠지?
②신이 있다고 믿었는데 실제로 없을 경우. 이 같은 경우에 그 결과를 알고 난 뒤 조금은 허탈하겠지만 그는 신의 존재를 믿고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크게 손해 보지 않는다.
신 안믿음 놈들이랑 똑같은 대우받아서 기분이 좀 나쁘겠지?
③신이 없다고 믿었는데 실제로 있을 경우. 이 경우가 입는 데미지가 가장 크다. 이 사람은 신을 믿은 사람과 달리 사후 세계에서 찬밥 신세가 될테니까.
한마디로 남들은 다 받는 소득 공제 못받은 사람이랄까??
④신이 없다고 믿었는데 실제로 신이 없을 경우. 이 경우 역시 1번과 동으로 별 손해 보는 것이 없다.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 없는 것은 당연하므로.
결론적으로 신이 있다고 믿으면 두번째 경우에서 오는 허탈감이 존재 할 뿐이지만. 신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더 많아진다.
그러니까 파스칼 내기에 결론은 신이 있다고 믿으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말을 빌리자면 ..
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전지전능한 실제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이루고 싶은 즉 이상적인 것들의 총체적인 집합인 셈이다. 결국 신은 인간의 이상인 것이다.
나는 이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이것이 정답이라면 종교의 교리와 같은 것들이 너무 많이 수정된다. 그래도 그것이 옳다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면 모두가 받아 들여야 하지 않을까?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 그건 누구에게나 존재 할 것이다. 다만 그것을 항상 염두하면서 인지 하느냐 못하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항상 인지하는 사람은 인간에 대한 분류가 나름 체계적이고 또 객관적이며 일관성 있는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세상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 자신의 상황과 주위환경, 기분에 따라 그때 그때 태도가 달라진다. 그렇게 되면 대상이 되는 인간의 파악과 태도가 일률적이지 못하게된다. 잘못된 파악과 비 일률적인 태도는 대상에 대한 신뢰와 친밀도를 떨어뜨려 대상으로 하여금 안 좋은 인식을 심어 줘서 인간 관계를 그르치는 상황까지 가게된다. 결국 스스로가 스스로의 인간 관계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기준에 의해 정확한 분류에 의해 사람을 다루는 일.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행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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