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 5년만에 솔로가 되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요즘 혼자 영화보는 경우가 많아졌다.
집에서 디브이디를 빌려 혼자 영화보는 것은 예전부터 좋아했지만.
태어나서 여자 혹은 친구들과 함께 있지않으면 영화를 보지않았던 관습(?)때문에 혼자 영화보는 것을 굉장히 꺼려했다.
그리고 혼자 영화를 보면 그 것은 여자친구에 대한 배신 행위였으므로 그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예전에 음주가무만을 좋아하던 나라면
요즘 무슨 영화를 상영하는지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려는 건 무엇인지
감독의 표현이 미숙한 점은 무엇인지 이런걸 생각한다는 건 정말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요즘은 문화에 대한 욕구가 점정이라 혼자 영화를 보러가게 되었다.
혼자보고나니 왜 진작 이 좋은 것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후회를 하게되었다.
여튼 최근 신문에서 김용택 님과 나의 영화관이 비슷한거 같아서 이렇게 기사를 옮기게 되었다.
슬때없는 말이지만 책을 자주 접하지 못해 안타깝지만 신문이라도 똑바로 된 것을 맘껏 읽으니 불행 중 다행인 것 같다.
원문은 (http://www.hani.co.kr/arti/SERIES/183/305082.html) 이다.
월남에서 돌아온 동네 형의 노래
논두렁 깡패들도 기죽던 그 시절
나의 영화 보기는 참으로 오래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정부의 홍보를 위해 주민들에게 보여주었던 공보 영화를 학교 운동장에서 보았습니다. 인근 ‘삼사 동네’(주변의 모든 동네) 사람들이 운동장 가득 모여 본 영화 중에서 기억나는 영화는 <청년 이승만>이었습니다. 이승만이 독립운동을 하다 잡혀서 일본 순사에게 고문을 당하는데 손가락에다가 장을 지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배우 김진규씨가 이승만 역을 했지요 아마. 그렇게 공짜로 본 영화도 있고, 강변에 포장을 치고 영화를 상영하는 가설극장도 있었지요. 중고등학교 때는 순창극장에서 상영되는 모든 영화는 어떻게든 거의 보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오리를 키우던 1년은 영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오리를 키우다가 망해서 서울로 도망을 가다가 대전까지밖에 갈 차비가 없어서 외삼촌댁에 들렀는데, 그때 서울 가는 기차표 끊고 남은 돈으로 대전역 부근에서 영화를 오랜만에 보았지요. 구봉서 주연의 <남자식모>였습니다. 서울에서 한 달쯤 살다가 시골로 내려와서 광주로 선생 시험을 보러 갔는데 사촌동생이 광주 갈 차비 150원, 올 차비 150원 총 300원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갈 차비 150원 중에서 영화를 보고 말았습니다. 영화 제목요? 두 편 동시 상영이었는데, 기억 없습니다.
내가 하도 영화를 많이 보아서 그런지 영화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이 있었지요. 왜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그 일에 대해 되든 안 되든 나름대로 할 말이 생기잖아요. 그 글들을 잡지에 연재했는데, 글쎄 그 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어요. 첫 권은 내가 영화 이야기를 쓴다고 해서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그 책을 그냥저냥 사 보았습니다. 그때 내 책을 낸 출판사에서 엄청나게 광고를 때렸지요. 아마 그 출판사 본전 못 건졌을 것입니다. 내 깐에는 그 책이 잘된다 싶어 두 권째를 냈지요. 왜 영화도 ‘투’가 있잖아요. <매트릭스>, <슈퍼맨>, <쥬라기 공원>, <인디아나 존스>, <터미네이터>, <다이하드>, <공공의 적> 등 여기 다 옮길 수 없을 만큼 많지요. 그런데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요.


올여름은 유난히 기대(?)되는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영화를 기다린다는 것은 내게 행복입니다. 세상에 영화가 없다면, 생각만 해도 심심합니다. <강철중>은 그저 그랬습니다. 전편들과 그리 크게 다르지 않았고, 모든 예술작품들이 다 그렇지만, 영화라는 게 현실과의 긴장을 담아내지 못하면 설득력을 잃게 되지요. 결국은 감독의 정확한 현실 인식에 문제가 있겠지요. 요즘같이 아예 드러내놓고 노골적으로 나쁜 짓을 하는 이런저런 ‘공공의 적’들이 많은 세상에 진짜 ‘공공의 적’을 찾지 못한 강철중의 주먹질은 갈 데가 없는 듯했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놈놈놈>)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다크나이트>도 보았습니다. 얼마 안 살았지만, <놈놈놈>에서 송강호같이 이상한 ‘놈’은 정말 보다보다 첨 봤습니다.
그리고 영화 <님은 먼 곳에>를 보았습니다. 영화 잡지를 통해 보았던 이 영화 포스터는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큰 가방을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는 이마를 가리고 야자나무 위를 날아가는 헬리콥터들을 바라보는 여인의 뒷모습은 나를 혹하게 했습니다. 아주 날씬한 아가씨가 입고 있는 그 치맛자락이 휘날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이 영화를 가슴 졸이며 기다렸습니다.

카메라가 벼 쓰러진 논을 지나 느티나무 밑 할머니들 앞에 서서 눈을 지그시 감고 순이(수애)가 노래를 부르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순이는 수건을 목에 둘렀지요. 목 부근의 옷이 땀에 젖어 있었습니다. 긴 머리를 뒤로 묶고 선 순이의 모습은 막 시집온 참한 시골 색시 모습입니다. “내 마음 모두 그대 생각 넘칠 때/ 내 마음 모두 그대에게 드리리./ 그대가 늦어지면 내 마음도/ 다시는 찾을 수 없어요./ 늦기 전에, 늦기 전에/ 빨리 돌아와 주오.”

순이가 남편을 찾아 월남을 향해 가는 배 갑판 위에서 같이 가게 된 밴드마스터들에게 노래를 배울 때, 처음 배우는 노래에 자기도 모르게 젖어가면서, 그리고 스스로 그 노래에 자신을 얻어가면서 빙긋 웃는 웃음은 나도 모르게 정들 웃음입니다. 검지손가락을 세우고 위아래로 손과 몸을 같이 흔들며 “오! 수지 큐!” 하며 웃는 순이의 모습을 보고 반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신작로 먼지 속에 핀 코스모스 꽃같이 애잔한 여인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좋아합니다.
신작로 먼지 속 코스모스 꽃처럼
애잔하기 그지없는 여인이 왔다
짧고 붉은 옷을 입고 소낙비 속에서 순이가 온몸으로 웃으며 노래를 하는 장면은 우리 영화 속에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소낙비 속에서 군인들에게 들려가며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고 소낙비를 맞는 순이는 한 시대의 슬픔 속에서 개화한 꽃이요 환희요 탄생이요 절정이었습니다. 순이가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을 찾아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으로 가는 과정은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어쩌면 이 땅의 모성이 다 그러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월남전에 대해, 그 전쟁이 갖는 이런저런 의미의 말들을 나는 말하지 않을랍니다. 아련한 추억 속으로 우리를 이끌고 가는 김추자의 노래가 가는 대로, ‘순이’가 ‘써니’가 되어가는 수애를 따라갈 뿐입니다.
|
||||
예술은 설명이 아니고 감동이지요. 감동은 일상에서 옵니다. 일상의 존중을 모르는 예술작품들은 억지지요. 일상의 재구성을 통한 긴장된 새로운 세계의 창조가 예술일 때 공감을 넘어선 감동이 일지요.
한 편의 영화가 막 시작되려는 그 짧은 어둠의 긴장을 나는 좋아합니다. 지금 막 새로운 인생이, 새로운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지려고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오! 수지 큐!”
p.s 이준익 감독의 음악영화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한 영화 '님은 먼 곳에'는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에서 보다 한층 더 '깊이 있는 영화'라고 나는 본다.
뭐 물론 내가 수애님을 너무 사랑하는 탓에 좋게 본것 만도 있지만.
김용택 님은 어쩜 이렇게 내 생각과 똑같을까....
용서받지 못 할 사랑은 없다.
그래 어쩌면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모든 사랑했던 것들에 대해서 용서를 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디브이디 나오면 꼭 보거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008/09/07 23:19뭐야 이자식아.ㅋㅋ
영국에서 놀았구만..
메일 답장안쓰면 죽는다고 했지??
블로그하고 싶다고??ㅋㅋㅋㅋ
하면 도와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