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읽는 건 많은데 쓰지는 않는다 이거다. 어느 날 친구가 '읽는 책 마다 다 블로그 질 하냐?, 고 물어 본적이 있다. 절대 아니다. 내가 읽은 책 중에 너무 욕할 것이 많거나 너무 칭찬할게 많거나 혹은 생각할 것을 던져주고 가는 책에 대해서만 서평을 쓴다. 그런데 항상 이런 생각만 한다. 내가 그 좋은 책들 혹은 더러운 책들을 글로 쓸만한 재주와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면 글 쓰기가 두려워 지고 시험기간이 다가와서 시간이 없어지고 결국은 그때의 그러니까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과 생각을 잃게되는 악 순환만이 반복된다. 사실 지금 정리하려는 책들도 (이걸로 정리가 안되는 책들도 있지만) 악순환을 거쳐 '살아남은 자들'이다. 뭐 한꺼번에 책을 여러권 쓰는 데에는 '다독'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문안한 것 같다.



① 도가니.
산문집까지 히트치는 소설가 공지영의 최근 작품이었다. 수능을 통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무진기행'을 도입부에 사용함으로써 소설에 대한 궁금점을 증폭시키고 집중력을 높인 점이 아주 잘 되었다. 그리고 안개라는 매개체가 진실을 가리고 있는 존재로 형상화하면서 '진실에 대한 궁금증'을 독자로 부터 잘 이끌어 내었다. 결국 소설의 초반부는 독자들에게 궁금점을 유발해 책을 놓지 못하게 하였고, 중반 이후 부터는 과연 재판의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에 대한 궁금증으로 독자들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결론은 너무 현실적이라 (사실 이런건 소설이니까 난 아직까지 해피엔딩이 좋고 정의가 승리하는게 좋다.) 개인적으로 허무하기는 했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작가의 의지를 아주 적절한 상황으로 표현했다. 평소 장애우의 인권에 대해서 문외한과 무관심을 함께 소유하고 있었는데, 책의 내용이 실제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지나서 생각하니 이건 장애의 문제 뿐만 아니라 최근 이슈가 된 아동 성폭행 사건과도 관련이 있고 한국 기독교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인 '배타성'에 대한 접근이 잘 이루어진 소설이다. 평소에도 생각하는 거지만 만인의 아버지신 하느님은 모두를 사랑하신다고 말하면서, 그를 따르는 자들은 왜 이렇게 배타적인지 알 수 없다. 여튼, 공지영의 글 재주는 가히 전성기라 할 만 하다.
② 면장 선거.
우리에게는 '공중 그네'로 알려진 일본의 유명 작가인 오쿠타 히데오의 작품이다. 책을 읽기 전에 내가 이해하기 힘든 외국 서적의 경우는 작가의 말과 해설을 먼저 참고한 뒤에 본격적으로 독서에 들어간다. 그렇게 하면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잘 가기도하고 작가의 의도와 근접하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개인적인 재량에 의해 좌우되지만, 작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다른 작품까지 잘 못 이해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작가의 책이나 외국 서적을 읽을 경우에는 이 방법을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이야기가 좀 다른 곳으로 빠졌지만, 여튼 해설자의 말에 의하면 (여기서 해설자는 평론가를 말함) 오쿠타 히데오의 다른 작품과 달리 사회적인 의식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소설의 경우는 '사회 참여적 소설'이 드물기도하고 또 한국으로 번역해서 넘어오는 경우는 더욱 드물기 때문에 굉장히 기대를 가졌다. 막상 읽어보니 한국의 다른 소설에 비해서, 너무 약한 참여와 정말 어이없는 해결책을 담고 있었다. 이런걸 '일본 스럽다'라고 하는 것 같다. 일본 소설은 역시 야릇야릇한 연애 소설이나 읽는게 맘 편할 것 같다.
③ 한국의 전통연희.
우리 학교의 전경욱 교수님이 지은 신 책으로 그 분의 수업을 듣기위해 읽고, 구입한 책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연희들 , 판소리 산대놀이 등이 어떻게 변모하고 발전해 왔는지, 그리고 그것들의 기원에 대해서 동아시아적인 관점에서 다룬 책이다. 교수님의 주된 생각은 국수적인 '절대적 자생관'이 아니라 '기본적인 토착 문화 + 발전된 외래 문화의 수용'이다. 즉, 예전에도 오늘날과 같이 우수한 문화는 외국으로 전래되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민족이나 수용국이 자신들의 자생적인 토착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의 재창조'가 이루어 진다고 교수님은 보았다. 또 자생적 토착 문호가 약하다면 당연히 일방적으로 수용하거나 재창조의 수준이 떨어져 우수한 문화를 이룰 수 없지만, 우리의 경우는 우수한 토착문화를 가지고 있었기에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문화국가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략적으로 판소리나 산대놀이의 기원을 '산악 백희'와 같은 전통적인 놀이와 외래의 문화가 점점 융합 발전을 이루어서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학술서답게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고 다소 생소한 분야라 읽어 나아가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인문서와 비슷하면서도 좀 다른 느낌이 든 것은 '고증의 많은 흔적'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가지 이야기를 하더라도 충분한 예시와 근거를 제시한 점, 기원에 대해서 말을 할때 다른 사람들의 관점에 대한 장단점을 이야기하고 종합적으로 분석한 점이 이 책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교수님의 큰 틀에는 동의를 하지만, 그러니까 발전을 위해서 외래문화를 받아들여한다 에는 동의를 하지만, 발전을 위해서 '주객의 전도'( 외래문화가 토착문화 위에 굴림하는 현상)까지 받아들여 한다는 것은 조금 이해를 할 수 없다. 한국의 전통연희의 발전 양상을 한 권에 알 수 있는 '량서'임은 확실하다.
④ 외딴방.
처음으로 접한 신경숙 작가의 작품이다. 처음에는 문체를 따지려고 했던 나름의 성향때문에, 문체보다는 흐름 중심의 신경숙 작가의 책이 너무 답답하고 재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굉장히 독특하지만 짜증났었던 '~~했다, 고~~' 이 문구들이 신경을 거슬렀다. (근데 싫다고 하면서 나도 이렇게 쓰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겼다.)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아주 좋았다. 또 작가는 '흐름'으로 이해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은 뒤 부터는 책이 저자를 '신경숙'이라고 밝히지 않아도 신경숙임을 알 것 같은 정도로 작가의 특성이 잘 담긴 책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양심을 버렸야 했던 작가의 개인적이 고백이 담기긴 책이다. 먹고 살기가 바빠서, 자신을 위해 애쓰는 가족들의 저버릴 수 가 없어서,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않고 참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작가는 어렵게 꺼내어 놓았다. 얼마나 속이 시원했을까? 누구나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있다. 남의 눈을 중요시하는 우리 내의 정서상 '부끄럽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것을 가리고 감추려고만 애를 쓴다. 하지만 작가는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예전 일을 당당히 고백하고 반성을 하였다. 아마 고백을 통해 '다시는 부끄러울 짓은 하지않겠다.'는 개인적인 다짐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고 우리도 한번 쯤 '부끄러움'을 말해 보는 것은 어떨지...
⑤ 마이 시스터즈 키퍼.
상당히 소재가 도특한 조디 필코드의 책이다. 백혈병이 걸린 언니의 치료를 위해, 유전적으로 완벽한 '시험관 동생' 안나의 '자신의 몸에 대한 주권 되찾기 프로젝트'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치료를 받고, 장기를 기증할 권리는 개인에게 있다. 그것이 환자이건 아이이건 간에 몸의 주인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다. 작가는 앞서 말한 상황 설정을 통해 '가족애' 와 '자신의 권리' 사이에서의 고민 거리를 독자들에게 제공하였다. 자신의 몸을 지키기위해 (실제로는 더 이상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고 싶지않은 언니를 위해) 어머니를 안나가 고소하게 된다. 아마 독자들은 재판의 과정에서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하다가 안락사, 시험관 아기, 유전자 복제 등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의료 쟁점들에 대해서 한번쯤 깊은 생각에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소설의 구성을 살펴보면 안나의 고소부터 재판이 끝날때 까지 하루하루를 개개인의 시점으로 풀어나 간 것이 독특하고 좋았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에서 나는 그야말로 '깜놀'하고 영화는 어떻게 나왔을까 궁금해하면 꼭 한번 보기로 다짐했다. 아마 무조건 책이 영화보다 우월하다는 내 지론을 깨지 못할 듯 하다.
⑥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러시아의 거장' 솔체니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부터 그의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서야 책을 읽게 되었다. 러시아 공산주의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북한 정치수용소'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예상한다면 실제로 수용소 생활을 오랫동안 겪은 작가가 대단하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기때문에 매우 사실적이다. 이런한 끔찍한 상황을 보거나 말하거나 혹은 작가처럼 글을 쓸때에는 대부분 감정이 격하게 된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 이런 짓을....'이라던지 '인간이 이렇게해서 살 수 있는 건가....' 따위의 말이 나와야한다. 하지만 정말 그에게 수용소의 하루는 '일상'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오히려 그는 담담하다. 무감각하고 당연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더 충격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 혀를 내두른다. 작가는 '풍경화'그리듯이 있는 그대로를 시간에 따라 묘사한다. 끔찍한 추위도, 어이없는 규칙도 그는 모두 '극단적으로 객관화'시킨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 서술한다. 솔체니친의 특징이 이것이라면 정말 독특하고도 매력적이다. '고전급 소설'은 괜히 사람들에게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다.
2009년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해마다 글의 수도 주는 것 같고, 독서의 양도 줄어 드는 것 같지만, 그 질만은 점점 향상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 올해도 글을 쓸 수 있는 나,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나는 행복했다. 여러분도 책과 함께 행복한 한 해의 마무리와 새맞이를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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