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따뜻한 손을 가진 그녀가 건내준 책.
조용한 데이트를 위해서 갔던 '이상' 북 카폐.
의아하게도 외국소설을 진열해 놓은 책장에 외로이 있었던 '굳빠이,이상'.
미친듯이 읽었다.
무언가에 집중하지않으면 불안했던 그 때에
나는 어쩌면 가장 나스러운 방법으로 그 불안감을 해소했다.
시간이 촉박해 다 읽지 못했던 '굳빠이, 이상'.
그녀는 기억해주었다.
나의 아쉬움을.
어쩌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랜 만에 무언가에 집중하는 내 모습이 반가웠기 때문에, 하루 빨리 아픔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그녀도 책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책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 했는지도 모를일이다.
그렇게 읽은 책. 굳빠이, 이상
아마 내 생에 이렇게 치열하게 읽은 책이 있을까?
나를 분노케한 전태일의 평전도,
나를 슬프게 했던 엄마를 부탁해도,
글쟁이의 꿈을 잠깐 꾸게 했던 황석영의 소설들도...
나를 이렇게 미치도록 독서하게 하지는 못 했다.
감정은 감정이고 책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굳빠이, 이상'에 대한 평가는 '역시 김연수 작가'라는 말이 최고인 듯하다.
우선 소설의 구성을 떠나서 '불운의 천재, 이상'에 대한 작가의 철저한 조사를 칭찬하고 싶다. 현존하는 이상에 관한 소설의 완결판이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이상에 대한 조사가 완벽하다. 이상의 죽음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이 책에 모두 담으므로 산발적으로 존재하던 이상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캐내려 했던 작가의 노력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 느껴졌다. 이러한 조사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작가가 구성한 정말 실제같은 가상의 설정 (데드 마스크와 오감도 제16호 실화와 관련된 이야기)이 톱니바퀴처럼 딱 맞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기때문에 사실의 진위를 의심할 여지없이 독자는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다음으로, 김연수다운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밤은 노래한다'에서도 작가가 보여주었던 소설의 중심 개념인 '인간의 믿음이 보여주는 절대성'의 시초인 작품으로 나한테는 여겨졌다. '밤은 노래한다'에서 작가는 인간의 절대적인 믿음이 보여주는 참혹함을 민족의 역사적 비극과 함께 엮어 풀어낸 바가 있다.
'밤은 노래한다'보다 상당히 전에 저술된 '꾿빠이,이상'은 인간이 진위와 논리성 여부를 떠나 맹목적 믿음을 보여주기 전 단계인, 사실인가 허위인가를 구별해 내는 단계의 인간 간의 혼란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떠한 팩트(fact)사실인가 아닌가는 '정황을 통한 방증'이 아닌 내가 이 팩트를 믿는가 아닌가에 대한 열정 혹은 확고한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고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발상이 나름 혼란의 시대 (군사정권과 민주화시대 사이에서 경계인의 역할을 하였음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라는 책에서 작자가 자신을 밝혔다고 나는 이해했다.), 그 회오리 속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항상 찝찝하였던 작가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개인적인 생각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믿던 안 믿던 나는 이 책을 읽은 이후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조금 더 무덤덤해지려 노력하였고, 실제로 시간의 치료와 함께 작용한 책의 여운이 나를 좀 더 무덤덤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상은 죽었고, 그는 천재로 남았다. '팩트에 대한 진실'은 이상, 자신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정말 이상이 데드마스트를 원했는지, 와타나베의 제보처럼 이상이 하루야마 유키오의 습작을 표절했는지, 서혁수의 수기에 실린 오감도16호가 이상의 유고작인지는 이상 자신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상이 죽은 직후에도 밝히지 못했던 데드 마스크의 존재 여부를 근 100년이 지나 밝힌다는 것은 무리이고, 설사 밝힌다고 하여도 모두의 신임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이상 자신이 이렇게 많은 비밀을 앉고 죽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논란을 만들고 갑작스럽게 떠났기 때문에, 그는 한국 문학의 전설이 되었고, 죽어서도 살아있는 문학의 천재가 되었다. 작가의 말처럼 이상은 이상이기 때문에 그의 문학을 인정받은 것이고 그 이후에 이상의 스타일을 따라한 사람은 그 져 짝퉁에 불과하다는 말이 옳다.

아버지는 죽었다. 아무말도 남기지않고 해결해야 할 그 어떤 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아버지는 나를 떠났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나를 지키러갔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정말 지병이 있었는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나를 지키러갔다고 확정지을 수 있다. 이 시련을 통해 넌 더 강해져야한다고, 이 고난을 통해 넌 더 단단해져야한다고 아버지는 나에게 그걸 주기위해, 그걸 통해 날 이 험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나를 지키려고 하신거다.
'절대적 사실'은 '아버지는 갔다'이다. 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죽음의 의미를 바라보는 사람에 믿음에 따라 그 의미는 진실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믿음은 아버지는 나를 지키로 갔다고 믿겠다. 믿는 자의 의지가 확고하면 진위여부를 떠나 그건 적어도 나에는 '진실'이 되는거다. 그 믿음이 만든 진실은 죽어서도 내 가슴에는 살아있는 아빠를 만들었다.
아빠는 떠났지만 나를 지키고 있는거다.
굳빠이, 아빠
그 진실로 두려워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이 진흙탕 경쾌한 걸음으로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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