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6/29 굳빠이, 아빠
  2. 2010/02/19 다독⑨ - 어렵다. (2)
  3. 2009/07/03 김연수와 김영하 (6)
  4. 2009/04/30 지식ⓔ-시즌 4. (2)
  5. 2008/11/12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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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따뜻한 손을 가진 그녀가 건내준 책
.

조용한 데이트를 위해서 갔던 '이상' 북 카폐.
의아하게도 외국소설을 진열해 놓은 책장에 외로이 있었던 '굳빠이,이상'.
미친듯이 읽었다.
무언가에 집중하지않으면 불안했던 그 때에
나는 어쩌면 가장 나스러운 방법으로 그 불안감을 해소했다.
시간이 촉박해 다 읽지 못했던 '굳빠이, 이상'.
그녀는 기억해주었다.
나의 아쉬움을.

어쩌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랜 만에 무언가에 집중하는 내 모습이 반가웠기 때문에, 하루 빨리 아픔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그녀도 책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책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 했는지도 모를일이다.


                                         


그렇게 읽은 책. 굳빠이, 이상
아마 내 생에 이렇게 치열하게 읽은 책이 있을까?
나를 분노케한 전태일의 평전도,
나를 슬프게 했던 엄마를 부탁해도,
글쟁이의 꿈을 잠깐 꾸게 했던 황석영의 소설들도...
나를 이렇게 미치도록 독서하게 하지는 못 했다.

감정은 감정이고 책은 책이다.
인적으로 '굳빠이, 이상'에 대한 평가는 '역시 김연수 작가'라는 말이 최고인 듯하다.

 우선 소설의 구성을 떠나서 '불운의 천재, 이상'에 대한 작가의 철저한 조사를 칭찬하고 싶다. 현존하는 이상에 관한 소설의 완결판이라고 말하고 싶을 만큼, 이상에 대한 조사가 완벽하다. 이상의 죽음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을 이 책에 모두 담으므로 산발적으로 존재하던 이상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캐내려 했던 작가의 노력이 책을 읽는 순간순간 느껴졌다. 이러한 조사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작가가 구성한 정말 실제같은 가상의 설정 (데드 마스크와 오감도 제16호 실화와 관련된 이야기)이 톱니바퀴처럼 딱 맞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기때문에 사실의 진위를 의심할 여지없이 독자는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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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으로, 김연수다운 발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밤은 노래한다'에서도 작가가 보여주었던 소설의 중심 개념인 '인간의 믿음이 보여주는 절대성'의 시초인 작품으로 나한테는 여겨졌다. '밤은 노래한다'에서 작가는 인간의 절대적인 믿음이 보여주는 참혹함을 민족의 역사적 비극과 함께 엮어 풀어낸 바가 있다.
'밤은 노래한다'보다 상당히 전에 저술된 '꾿빠이,이상'은 인간이 진위와 논리성 여부를 떠나 맹목적 믿음을 보여주기 전 단계인, 사실인가 허위인가를 구별해 내는 단계의 인간 간의 혼란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떠한 팩트(fact)사실인가 아닌가는 '정황을 통한 방증'이 아닌 내가 이 팩트를 믿는가 아닌가에 대한 열정 혹은 확고한 의지에 의해 좌우된다고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발상이 나름 혼란의 시대 (군사정권과 민주화시대 사이에서 경계인의 역할을 하였음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라는 책에서 작자가 자신을 밝혔다고 나는 이해했다.), 그 회오리 속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항상 찝찝하였던 작가의 삶이 그대로 투영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흥미로웠던 것은 개인적인 생각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믿던 안 믿던 나는 이 책을 읽은 이후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조금 더 무덤덤해지려 노력하였고, 실제로 시간의 치료와 함께 작용한 책의 여운이 나를 좀 더 무덤덤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이상은 죽었고, 그는 천재로 남았다. '팩트에 대한 진실'은 이상, 자신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정말 이상이 데드마스트를 원했는지, 와타나베의 제보처럼 이상이 하루야마 유키오의 습작을 표절했는지, 서혁수의 수기에 실린 오감도16호가 이상의 유고작인지는 이상 자신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이상이 죽은 직후에도 밝히지 못했던 데드 마스크의 존재 여부를 근 100년이 지나 밝힌다는 것은 무리이고, 설사 밝힌다고 하여도 모두의 신임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이상 자신이 이렇게 많은 비밀을 앉고 죽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논란을 만들고 갑작스럽게 떠났기 때문에, 그는 한국 문학의 전설이 되었고, 죽어서도 살아있는 문학의 천재가 되었다. 작가의 말처럼 이상은 이상이기 때문에 그의 문학을 인정받은 것이고 그 이후에 이상의 스타일을 따라한 사람은 그 져 짝퉁에 불과하다는 말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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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죽었다. 아무말도 남기지않고 해결해야 할 그 어떤 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아버지는 나를 떠났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나를 지키러갔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정말 지병이 있었는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가 나를 지키러갔다고 확정지을 수 있다. 이 시련을 통해 넌 더 강해져야한다고, 이 고난을 통해 넌 더 단단해져야한다고 아버지는 나에게 그걸 주기위해, 그걸 통해 날 이 험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나를 지키려고 하신거다.

'절대적 사실'은 '아버지는 갔다'이다. 왜 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죽음의 의미를 바라보는 사람에 믿음에 따라 그 의미는 진실이 될 수도 있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믿음은 아버지는 나를 지키로 갔다고 믿겠다. 믿는 자의 의지가 확고하면 진위여부를 떠나 그건 적어도 나에는 '진실'이 되는거다. 그 믿음이 만든 진실은 죽어서도 내 가슴에는 살아있는 아빠를 만들었다.
아빠는 떠났지만 나를 지키고 있는거다.

굳빠이, 아빠

그 진실로 두려워하지 않고, 주저하지 않고 이 진흙탕 경쾌한 걸음으로 걸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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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29 00:20 2010/06/29 00:20
BooK ReVieW. l 2010/06/29 00:20
문득 블로그를 처음 했을때가 생각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준희가 고맙다. 준희형이 많은걸 가르쳐줘서 책도 많이 읽을 수 있었고, 나름 생각도 깊어졌고, 정리할 공간을 만들 수도 있었고,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스스로 익혔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주변의 친구들이 이제 나에게 그런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기때문이다. 내가 떠벌리고 다닌적은 없는것 같은데(은근히 떠벌렸다면 한심한 새끼.ㅋ), 주변사람들이 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해오고, 글 재주를 부려달라고 부탁을하고, 블로그 운영에 대해 묻기도 한다. 뿌듯하다.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꾸준함으로 누군가와 다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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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이늘고, 지적 수준이 예전에 비해 많이 올랐다는 것은 정말 기쁜일이다. 그래도 부족하다. 아직도 책을 읽으면 '아~ 무슨 말이지?' 라고 나도 모르게 말하면서 나의 '습자지 지식풀'에 한탄하기 일수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정말 이해하고 싶은데 이해되지않는 것이 있어 소개하려고한다. 혹시나 잘 이해하고 좋은 느낌 받으신 분들 나도 그런 느낌받게 도와주세요~


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로 반해버린 작가, 김연수의 소설이다. 모든 독자들이 그렇듯,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사람의 작품들을 찾아보기 마련이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라는 책을 빌렸다. 김연수의 '그 많은 상탄 유명작'들을 냅두고 왜 하필 이 책을 골랐냐고 물어본다면 2가지 이유에서이다. 첫번째는 준희가 감탄을 연발하며 꼭 읽어보라며 몇 년전 부터 추천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이고 두번째는 기본적으로 상을 좋아하지 않기때문이다. 상이야 받으면 좋은 것이기는 하나, 개인적으로 '작품이 훌륭해서 상을 준다기 보다는 상이 있기때문에 작품을 선정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추천 받은 이 책을 골랐.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너무 어렵다. 작가로 표현되는 '나'가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격동의 한국사'를 지켜보고 있다. 군부에서 민주정부로 넘어가는 시기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은 아니나 그렇다고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도 아니다. 거기에다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들까지 (할아버지의 인생, 독일에서 들은 일 등) 합세하면서 나에게는 너무 복잡한 스토리전개가 되었다. 결국 주인공이 '역사의 적극적인 참여자와 비참여자'사이에서의 갈등을 나타내려고 한 소설인 것으로 보이나, 정말 정확한 것은 아직도 모르겠다. 한번 더 읽어 볼 생각을 하기는 했으나, 이해안가는 책은 누구에게나 재미가 없기 마련이다. 평양감사도 제 싫음 안하는 거니까 이 책은 포기하고 잘 이해한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야겠다.

② 로쟈의 인문학 서재.
 나의 지식창고, '로쟈의 저공비행'의 주인장인 이현우씨가 출판하신 '블룩'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곁다리 인문학자'라고 부르며 겸손을 피우지만, (더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볼때는 정말 부러운 지식을 가진 사람이고, 또한 지성인이라 할 수 있겠다. 평소에도 그의 블로그를 들어가면 내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공대생의 한계도 있고, 사람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 수도 없고, 작자는 공부를 오래한 사람이니까 나보다 많이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을 혼자서 한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러시아에 관한 것, 지젝이라던가, 러시아 정세 문학부터 아주 다양하게 논하는 작자에 비해 나는 러시아에 관심도 없었고 아는 것도 없기에 글이 지루했다. 그래도 김훈의 문체에 관한 글, 김기덕 감독의 영화세계에 대한 평론 등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 좋은 글이 었다고 나름 평가해본다. 이 책의 같은 경우 딱히 잘 못된 점은 없는 것 같지만 작자와 나의 관심사 차이로 인한 책 소재의 생소함이 내용의 어려움보다 더 심하지 않았나 싶다. 좀 더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 주었다면 나같은 '다방면의 문외한'도 여러가지로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개개인의 그러한 생각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우리의 정서가 '남에게는 야박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사회의 분위기를 조장하는데 어느 정도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르는 걸 부끄럽지 않게 인정할 수 있는 그런 '다른 사회'가 정말 가능한 걸까? 자신은 없는데, 열정은 잃지말자. 그 열정이 모여야, 언젠가라도 세상이 변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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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9 02:10 2010/02/19 02:10
GoSSip aBouT BookS. l 2010/02/19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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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문단에서 가장 영향력있고 펜 좀 굴리는 젊은 작가가 누군가라고 물어 본다면 기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말을 달리하겠지만 난 단연 김연수와 김영하를 뽑겠다. 그들의 작품을 많이 읽어보지않아도 (내 생각엔 한권만 읽어도) 아마 매료되어 빠져 나오지 못할 듯 하다.
우선은 문학으로써 재미있고 문체가 거부감이 들지않으면서도 자신들만의 개성이 있으며 생각할 거리, 잊고 살만한 것들에 대한 상기감 따위를 불러 일으키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들의 작품을 사랑할 수 밖에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최근 부족해진 '독서애'에 대해서 '권태기'를 극복 시켜준 김연수와 김영하의 책을 한 권씩 소개하려한다.

그들을 좋아할 만한 이유는 개인에 따라 다르고, 또 왜 하필 앞으로 말 할 책들이 이것이여야만 하나에 대한 답변은 바로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와 '빛의 제국'은 최근 내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사상'이라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이 너무 잘 빠진 것도 사실이고 개인적으로 '사상'이라는 것에 대해 상당한 영향을 받고 깊은 생각에 빠져 들게 하였다.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에서는 1930년 대 북간도 지방에서 생겨난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한다. '생각 차이'로 인한 독립운동 세력간의 분열, 또 더해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사태를 보여주면서 인간이 추구하는 '사상과 가치'가 한 나약한 개인에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침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한 개인이 휘둘려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잊고 살만한, 잊고 살았던 '아픔의 역사'가 김연수의 '시적 문체'를 만나 '다시금 부활'을 했다. '부활한 역사'는 아직도 '이념'이 존재하는 이 땅에 사는 우리들에게 100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인간은 '사상의 대립'에 있어서는 별로 진보함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김영하의 '빛의 제국'에서는 자신이 '고정간첩'임을 잊고 살정도로 남한 사회에 고착화된 한 고정간첩이 본부로 부터 하루만에 자신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지우고 북한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을 받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신이 남한에 내려와 산 20년을 '하루만에 다시 살아간' 남자의 이야기가 시간별구성과 속도감있는 문체를 만나 읽는 순간에도 다음 페이지가 궁금할 만한 훌륭한 소설을 만들어내었다. 사실 '20년 묵은 고정간첩'에게 이념이나 주체사상따위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적응한 신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인간은 세월에 갈수록 나약한 존재가 되고 생각도 변한다. 나는 이 소설에서 전부였던 '사상'이 한 날 '휴지 조각'따위로 변함을 느꼈고, 이념의 부질없음을 느꼈다.

'같은 세상'에서 '같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우리'이다. 우리에게 대상이 될만한 객관적인 요소는 너 나 구분이 없이 동등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단지 우리는 '객관적 요소'를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서 요소가 '자라'가 될 수도 있고 '솥 뚜껑'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솥 뚜껑이건 자라건 아무 상관없을 수도 있다. 사상이 그런 것이다. 전부다 살기좋은 세상, 유토피아를 꿈꾸는 가치관을 가지긴했지만 유토피아를 이루는 방식에서의 차이이다. 누군가는 파이에 크기가 주요할 것이고 누군가는 파이의 내용물이 중요할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파이를 어떻게 나누냐가 관건일 것이다.


       

'밤은 노래한다'에서의 사상은 그걸 만든 인간보다 더 중요한 것, 절대적인 가치가 되어서 결국 자신이 만든 것에 자신이 당하는 상황
을 보여주고 있다. 흔히 남과 북이 그런 상황이고, 진보와 보수의 대립이 흡사한 그림을 자아내고 있다. '빛의 제국'에서의 사상은 어떤 방향에 더 무게를 실느냐의 차이와 그것이 '전부'였는데 마지막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상황을 제시한다. '주체사상' 전파하기위해 내려왔던 그들은 먹고 살기 바빠 그런것은 안중에도 없어지거나 주체사상보다 더한 예수님과 종말론에 미쳐 청량리역에서 연설을 한다. 주체사상도 예수도 또 세상도 우리가 어떤 방향에 중점을 두고 어떤 것을 선택하냐에 따라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젖어드냐에 따라) 우리를 변화시킨다. 미치게 만들거나 무력한 인간으로 만든다.

사상이 절대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밤은 노래한다'와  '절대성의 무의미화'를 보여주는 '빛의 제국'은 같은 것에 대해서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사실 나는 '김연수가 보여준 사상'에 더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아직까지 '신념'이 주요한 열혈청년이다. 자신의 가치를 가장 많이 담고 있던 사람에 죽음에 넋을 놓고 울고, 잘되서 성공해서 바꿀거라는 꿈을 단 일초도 버린적이 없고, 설사 그러지 못하더라도 나하나 만큼은 적어도 변하자는 '개인 지론'을 가지고 있는 청년이다. 항상 그렇게 믿고 믿은 바 행동하려한다. 하지만 두렵다. '김연수가 보여준 가치'가 언제까지 가느냐의 문제이다. 남한을 온 통 빨간색으로 물들이겠다던 고정 간첩들도 변한다. 철저히 어떠한 사상에 길들여진 자들도, 어떠한 사상에 내면화된 사람도 '김영하가 보여준 가치'를 따라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들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사실 난 그렇게 강인하지 못하기 때문에 변할 걸 미리 예상하고 있다. (되도록 그렇지 않고 싶고 인정하기도 실은 예상이다.)

그럼 결론은 하나다. 나는 변한다. 언제 변할지는 모른다. 어떻게 변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진 않지만 또 그리 많지도 않다. 시간이 없다. 뭐라도 해야한다. 가진걸 내놓든. 작은 거라도 바꾸든. 시물레이션만으로는 소용이 없다. 움직이지 안을꺼면 글이라도 써라.
김영하가 예상한 다운이가 오기 전에 김연수가 제시한 다운이가 무언가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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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3 00:08 2009/07/03 00:08
BooK ReVieW. l 2009/07/0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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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지성'이라는 부제가 정말 딱 어울리는 지식ⓔ 4번째 시즌이 나왔다. 지식ⓔ이가 괜찮음을 넘어 '양서'의 자격을 갖춘 책임을 이미 나의 글방에서 밝힘바 있다. (http://www.ddawoori.com/entry/지식에도-감정이-있다) 책의 4번째 시즌도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책은 좋고 나쁨을 또 얼마나 좋은가를 따지는 것은 너무 무의미한 일인 것 같아 책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김연수 작가님'의 서문을 소개하도록하겠다.

 

 



무용해 보이는 그 모든 상상들이 이 세계를 바꾼다
김연수, 소설가

궁금한 건 이런 질문들이다.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언제 우리는 조금 더 강해지는가?

기륭전자 노조농성 1,040일째 되던 날, 한 여성조합원이 이 질문에 대답한다.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 동안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단신, 삭발, 삼보일배, 고공투쟁, 노숙투쟁을 진행하면서 비정규직의 설움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잠녀 할머니가 대답한다.

'스킨스쿠버? 그게 있으면 한 사람이 백 명 일도 할 수 있다며? 근데 그렇게 하면 나머지 아흔아홉은 어떻게 되나?'

그러니까, 연약해 보이는 그 모든 것이 힘이다. 외롭고 고통받고 슬퍼한 뒤에 우리는 조금 더 강해진다.

나는 '올바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고,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대신에, 외롭고 고통받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짓밟는 자들은 언제나 틀렸다고 말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계는 그들이 규정한 세계다.맞다, '그들'은 언제나 틀렸다. 하지만 이 '세계'가 틀렸다고 말하지 말자. 대신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말해보자. 우리를 꿈꾸게 만드는 건 역설적으로 이런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세계이니까. 그리하여 외롭고 고통받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어둠속에서 울면서 꿈을 꾼다. 깃털처럼 부드럽고 연약한, 흐르는 물이 꾸는 꿈을, 그런 꿈이 다른 세계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전쟁에서 왼손을 잃어버린 레판토의 외팔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 남은 오른손으로 글을 쓰는 거야!"

그렇다면 남은 오른손으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하루 종일 안경알을 깎고 또 깎았던,네덜란드의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불확실할지라도 온 힘을 다해 길을 찾으려 애쎴다." 온 힘을 다해 길을 찾으려 애쓰는 한, 우리는 우리 안에서 외로움과 고통과 슬픔을 발견하게 된다. 비로소 그때 다른 세계는 다시 한 번 가능해질 것이다. 우리 안의 외로움과 고통과 슬픔을 통해 이웃의 외로움과 고통과 슬픔을 눈뜨게 되면서.

이 책은 남은 것들, 여분의 것들, 제외된 것들을 바라보는 일이 곧 지식이라고 말한다. 해고된 비정규직, 나머지 아흔아홉 명, 그리고 남은 오른손을 생각하는 일. 그들에게도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은 남아 있다고 상상하는 일. 그 정도의 생각과 상상만으로 다른 세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는 책.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다. 연약해 보이는 그 모든 것이 바로 힘이 되듯이, 무용해 보이는 그 모든 상상들이 이 세계를 바꾸리라.

지폐는 두 손으로 찢으면 그냥 찢어지는 종이에 불과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게 만 원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연약한 종이로 쌀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그 쌀이면 우리는 내일 굶어죽을 수 있었던 한 아이를 살릴 수 있다. 지식은 돈과 같은 것이다. 모두가 상상할 때, 우리의 지식은 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쌀을 나눠줄 때, 비로소 미래는 바뀐다. 외롭고 고통받고 슬퍼하던 한 아이가 사라진 세계에서 그 아이가 여전히 살아 있는 세계로, 이게 세상을 바꾸는 가장 혁명적인, 그리고 가장 오래된 방식이다. 그러니 상상하자. 이뤄질 때까지 상상하자.

그리고 남은 오른손으로는 글을 쓰자.


김연수 작가님에게는 오른 손의 세상에서도 끊임없이 '다른 세상'을 꿈꾸며 남은 것들, 여분의 것들의 고통 슬픔 외로움을 걱정하며 상상의 끊을 놓지 않는 것, 그리고 그 것들을 자신의 글에 담는 것 만으로도 '상상만으로 부족한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스스로 최상의 방법일 것이다. 그의 글은 한국에서 꽤나 영향력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글을 사랑하고 있으니, 결국 그에게는 글 쓰기 자체가 상상의 부족함을 채울 행동이 되는 것이다. 나도 김연수 작가님처럼 나름의 표현 방법인 글 쓰기를 행동으로 여기며 내 생각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난 김연수 작가님과 같은 영향력도 글 재주도 깊은 생각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내 글이 대한민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유효자리 숫자를 차지하지 못한다.



무심코 본 sbs드라마 '시티홀'에서 시청의 국장급 공무원인 이정도(이형철 분)의 말이 나에 머리를 새하얗게 했다. '말로 비아냥 거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거든요...'
어쩌면 세상에 대한 불만, 불평등, 그들이 만든 틀린 것들에 대해 누군가 처럼 삭발을 한다든가, 전경 앞에서 문선을 한다든가의 용기는 나에게는 없다. 그냥 이 글, 그리고 나와 생각을 같이 하는 이들의 강연을 듣고 토론에 참가하는 것이 나에게는 한계점이다.
참으로 소시민적인 변명으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좆같은 건 내가 성공해서 바꾸면 된다.'라는 게 내 방침이다. 밑에서의 아우성은 잘못 된 것을 바꾸기도 힘들뿐더러 바뀌는데 걸리는 시간도 길다. 나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너 그 자리 가서도 안 변할 자신 있니?' 지식ⓔ-시즌 4는 머리 속에 잡동사니들을 죽방 길처럼 또 길다랗게 늘어뜨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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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30 21:00 2009/04/30 21:00
BooK ReVieW. l 2009/04/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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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낡은 가방을 열고
희미한 촛불이 흩어지는 마루 위에
여러 가지 책을 꺼내놓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 이 나라에서 금지된 것들이었다.
 
마침내, 내 친구는 사진 한 장을 찾아내어
‘이거야’ 하고 내 손에 얹어놓고는
조용히 또 창에 기대어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그것은 예쁘지도 않은 젊은 여인의 사진이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 ‘낡은 가방을 열고’ 전문)
김연수씨의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예쁘지 않지만 나에게 휘파람을 불러일으킬 만한 한 여자의 사진 한 장' 이다.
그래 난 그거면 된다.
무언가 거창한 것을 원하는게 아니다.
내 감정에 충실하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이건 인간이 누릴 당연한 권리인데 우린 그렇지 못하다.
어쩌면 이 세상 어느 때의 아무개 중 단 한 명도 그렇지 못하고, 못했다.

'젊은 여자의 사진'은 '금서들의 사이'에 숨어 있다.
세상이 그렇다.
내가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고.
내가 물리치고, 택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 들만 먼저 보인다.
그 것들이 '나를, 나의 이상을, 내가 원하는 것을 ' 가리고 있다.
난 정말 그 것들을 박차고 나아갈 힘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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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2 00:43 2008/11/12 00:43
RaTioNaL SkeTch. l 2008/11/12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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