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8/28 인동초
  2. 2008/07/20 우리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3. 2008/04/19 왜 니 블로그는 갈수록 우울해지냐? (3)
  4. 2008/04/02 20대, 나에게 펼쳐진 세상. (4)
  5. 2008/03/20 민족주의로 부터 군국주의 그리고 인종주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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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에서 세 개비의 성냥에 불을 붙인다.
첫번째 성냥은 너의 얼굴을 보려고
두번째 성냥은 너의 두 눈을 보려고
마지막 성녕은 너의 입을 보려고
그리고 오는 송두리째의 어둠을
너를 내 품에 안고 그 모두를 기억하기 위해서

(자끄 프레베르, 밤의 파리)
공지영의 '도가니'를 읽고




성냥을 켜서 '어두운 곳'을 밝혔던 분.
독재의 암흑 속에서 누구보다도
국민의
'자유를 향한 진심어린 표정'
'불의에 저항하여 타오르는 눈'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을 토해내는 입'
을 저버리지 않았던 분.
기억하고 지켜주셨던 분.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을 몸소 보여주셨던 분.


IMF의 경제 어둠 속에서
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 더 빨리 국민들을
어둠 속에서 구출하신 분.
항상 서민경제를 강조하셨던 분.



남북관계를 누구보다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셨던 분.
남북화해가 민족의 평생의 염원임을 잊지 않으셨고
그 염원이 '더 이상 염원이 아닌 현실'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셨던 분.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타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셨던 분.

인동초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역행하는 이 시대에 우리만 덩그러니 남기고 떠난 당신.
조금은 원망스럽고 '남은 반쪽'으로 버티신다고
고생하셨습니다.
어두웠던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당신은 꺼지지 않는
꺼질 수 없었던 '희망의 불빛'이 였습니다.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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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8 00:42 2009/08/28 00:42
RaTioNaL SkeTch. l 2009/08/28 00:42

전역하고 처음으로 로쟈님의 블로그에 들어갔다.
확실히 민간인이 되고는 먹고 살길이 바빠 책이며 지식이며
가까이 할 기회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요즘 국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한다.
우리가 진정원하던 국가가 이런 국가였을까?
국민을 업신여기더니 국민 때릴줄 만 알고 정작 필요할 때는 보호해주지 못한다.
게다가 이제는 땅까지 내어줄 판이니...
정말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요즘처럼 부끄러울 때가 없다.

로쟈님의 글 중 요즘 내가 고민하는 국가에 대한 글이 있길래 퍼온다.
현재의 우리 국가가 어떤 위치에 놓여있는지.
왜 이러한 상태가 되었는지.
그리고 국가론에 관한 책까지 소개되어있다.
원문은
(
http://blog.aladdin.co.kr/mramor?CommunityType=AllView&page=3) 이다.

며칠간 준-이사를 하느라고 바빴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동안 '원룸텔' 생활도 하게 됐고. 한 평 조금 넘을 듯싶은 공간은 모스크바 체류시절의 기숙사 방보다는 약간 작지만 시설은 '호텔급'이다. 다만 창문이 없어 '전망'도 없다는 게 약간 흠인데(대신에 더 조용하다고 한다. 그럴 거 같지 않지만), '고급 감옥'으로 생각하면 아쉬울 것도 없다. 사실 도서관 시설이 잘 갖춰진 감옥은 내가 꿈꾸던 공간이기도 했다(이 '감옥'은 이름도 '노블스 레지던스'다!). 엊저녁 입방해서 하루를 묵었는데 무선 인터넷의 강도가 좀 약한 탓에 바로 글을 올리거나 하진 못했다(자주 끊기기까지 한다). 오늘은 시범삼아 칼럼기사 하나를 옮겨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4#). 금강산 관광객의 피살 사건도 어제 있었지만 '바깥' 세상은 여전히 어수선해 보인다. '이거 뭥미?'의 세상이다. 어제도 '촛불'은 계속되었으므로 칼럼에서 말하는 '이중 권력', 혹은 '이중 국가' 상황은 여전히 유효하겠다. 우리는 과연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시사인(08. 06. 21) 우리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2008년 6월 중순 현재, 많은 사람이 대의민주제의 핵심인 정당정치가 실종된 상황을 걱정한다. 어떤 사람은 지금 대한민국이 ‘이중 권력(dual power)’ 상태라고 말한다. 정부 권력과 시민 권력이 날카롭게 대치한다는 거다.

내가 알기로 이중 권력이라는 말의 용례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일본 쇼군-천왕 체제의 기묘한 권력 분점을 묘사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약 90년 전에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최초로 이 말을 사용했다. 우리의 맥락은 전자와 무관하므로 후자라는 이야기인데,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혁명 전야? 에이, 설마! 오늘날 OECD 가입국에서 ‘혁명’이라는 단어는 광고 문구 또는 비유적 과장일 뿐이다. 체 게바라의 여전한 인기는 혁명의 절박한 요구 때문이 아니라 티셔츠로 소비될 수 있어서이다.

‘민족’‘통일’은 강한 국가의 수단으로서만 존재 의미 가져
한편 뉴욕 타임스는 이번 사태를 두고 “한국 민족주의 정서의 표출이다”라고 주장한다. 일부 운동권 역시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대한민국은 동북아시아의 마지막 분단국이고, 오랜 세월 외세에 시달려온 나라다. 그러나 북조선의 쇠락과 더불어 단일민족국가에 대한 한국인의 판타지는 상당 부분 사라졌다. 월드컵, 한류, 황우석 사태, <디워> 논란 따위에서 공통으로 드러난 것은 ‘강한 국가’에 대한 열망이지 과거와 같은 민족주의가 아니었다. 한국인에게 민족 혹은 통일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이지만 더 이상 그 자체가 목적이 되기 어려워졌다. 이제 그것은 어디까지나 강한 국가를 위한 수단으로서만 존재 가치를 지닌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니 민족 정서를 언급하는 것은 최근 10년간 대한민국에 일어난 급격한 변화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 변화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중 국가(dual state)’다. 이것은 위기에 처한 중산층과 ‘막장’에 몰린 빈곤층이 90%를 이루고, 금융위기 이후 압도적 부를 축적한 10%로 구성된 사회다. 그리고 매일 1000원짜리 김밥을 먹는 사람과 1만5000원 하는 브런치를 먹는 사람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그런 사회다. 이중 권력이 아니라 실은, 이중 국가가 문제다.

단순히 ‘10대90의 사회’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벌어진 급격한 사회·경제적 충격이, 국가의 역할에 대한 한국 사회의 합의를 걷잡을 수 없이 붕괴시켰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적 욕망만이 소용돌이치던 혼란의 와중에서 사회가 지켜내야 할 공공성은 무참히 찢겨 나갔다. 그 빈자리에 자리 잡은 게 바로 강한 국가, 일류 국가에 대한 달뜬 기대였다. ‘국가의 후퇴’가 ‘강한 국가의 열망’으로 나타나는 것은 초국적 자본이 판치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동북아 중심국가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정부는 이런 국민의 열망을 잘 감지했지만, 시장주의와 국가주의 사이에서 분열병적으로 오락가락하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해괴한 농담을 만들어냈고, 급기야 한·미 FTA까지 밀어붙였다. 5년 내내 혼란스러워하던 중산층은 정권이 바뀌고서야 자기가 사는 나라의 실체를 깨달은 듯 이렇게 외친다. “이게 뭥미?(‘이게 뭐야’라는 뜻의 인터넷 은어)”

거리집회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구호는 쇠고기 재협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도 민영화, 의료보험 민영화 반대 등 수십 가지에 이른다. 거칠게 묶으면 모두 국가가 해야 할 일을 포기하지 말고 제대로 하라는 얘기다. 가히 ‘국가의 귀환’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엔 중요한 질문이 빠졌다. 대체 우리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박권일/ <88만원 세대> 저자)

08. 07. 13.

P.S. '국가의 후퇴'와 관련하여 참조할 만한 책은 수잔 스트레인지의 <국가의 퇴각>(푸른길, 2001)이다. 저자의 <매드 머니>(푸른길, 2000), <국가와 시장>(푸른길, 2005) 등이 모두 국가권력과 시장권력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교재형 책들이라 재미있지는 않다).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세계 경제발전의 정치적인 논리'를 다룬 <자본과 공모>(휴먼&북스, 2008)가 눈길을 끈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름길을 제시하는 책. 저자는 성장을 강화하거나 혹은 반대로 국가의 성장 전망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정치적 동기들을 탐구한다. 리스크와 불확실성 사이의 경계선을 살피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르는 경제 성장 추진 동력을 분석한다."고 소개돼 있는데, 이 경우 성장을 위해서 국가와 자본의 긴밀한 연루와 공모는 권장되기까지 한다.

국가의 귀환에 대한 논리는 곧 '정치적인 것의 귀환'과 맞닿은 것이 아닐까 싶다. 샹탈 무페의 <정치적인 것의 귀환>(후마니타스, 2007) 등이 떠오르는 책이다.  

P.S
정말 요즘 뉴스보면 '이게 뭥미?'
언제 이 나라가 좀 '사람 살만한데가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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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0 17:15 2008/07/20 17:15
SoCial ReaDiNg. l 2008/07/20 17:15
                              BLOG main image                                   

친구들이 요즘 내 블로그 들어오는 것을 꺼려하기 시작했다.
물론 싸이월드라는 감성형(?) 개인 홈페이지에 워낙 물든 아이들이라 블로그가 무엇인지
또 왜 편한 싸이월드를 하지않고 계정도 도메인 내임도 사야하고 일일이 손 많이가는 블로그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런 친구들이지만 나의 '강권'을 이기지 못하고 방문해주시는 고마운 이들이 몇몇 있었다.
근데 요즘들이 그나마 몇몇이던 친구들도 떨어져 나가기시작했다.
친구들은 내가 이유를 묻기 전에 아주 친절하게도 가르쳐 주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 왜 니 블로그는 갈수록 우울해지냐?'
' 왜 세상 고민 혼자 다 안고가는 사람처럼 심각한 글 투성이냐?'
' 안그래도 힘든 세상 너 때문에 더 힘들어질 것 같아 들어가기 싫다.'

뭐 대부분 이런식의 이유를 들이대며 내 블로그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내 블로그의 심각성 자체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봐도 예전에 비해선 사회 참여적이고 시대 고민적인 내용이 조금은 들어갔다고 본다.
(뭐 남이 보기엔 하찮은 수준이거나 내 친구들이 아예 생각하지 않는 수준일 수도 있다.)
여튼 친구들이 보기에는 내 안에 작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 변화의 시작은 어디었을까?
내 나름 그 원인을 찾아 보자면 '한국인 박노자'를 접하고 나서 부터가 아닌가 싶다.
(물론 황석영 선생님의 소설도 많은 감흥을 주었지만 황석영 씨는 이미 개제된 글들에서 많이 쓰였으므로 여기선 언급하지않겠다.)
한겨레 신문이나 주간지를 통해 간간히 접한 적은 있지만 직접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것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유명한 그의 저서 때문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은 신선함과 충격적 시각을 제시한 저서였다.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인 그의 저술은 나를 한 순간에 사로잡았고
'나는 왜 이런 나라에 살고 있을까?'
'정말 대한민국은 이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가?'
등의 회의섞인 자조적 물음을 자아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 나에게 박노자를 사람을 소개해준 책이라면 '박노자의 만감일기'는 박노자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확립시켜준 책이다.
차칫 그가 주는 신선함과 충격적인 시각에 휩쓸려 박노자 선생님을 맹신하거나 무비판적인 수용자세를 가질 수도 있었는데 만감일기를 통해 배울 것은 배우고 생각할 것은 생각하게 되는 '능동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너무 한 쪽으로 편향되어있다.
그런 상황에서 박노자 선생님을 접한 나는 막역하던 반대편의 존재.
상상으로만 그릴 수 있었던 반대편의 생활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이 무조건 옳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지만
반대편의 존재를 인정하고 가치를 받아 들이므로써 현재의 잘못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하는 방향 이 사회가 모두에게 풍요를 제공할 수 있는
'진정한 실용주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얼마나 기쁘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물론 나같은 평범한 사람의 생각 하나가 또 그런 생각을 적은 블로그 질따위가 뭐 그리 중요하겠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박노자 선생님의 말처럼 블로그 질의 특성상 개인적인 이야기를 함과 동시에 어느 정도 타자와 소통의 창을 열어 놓음으로써 세상과 대화를 시도한다는 자체가 사회에 대해 변화를 이끄는 목소리의 일부가 된다고 나는 본다.

               

박노자 선생님.
그가 모든 면에서 '옳은 소리'만 내는 사람일 수는 없다.
내가 보기에도 맞는 말만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대부분의 한국인'보다
자신과 내부에 더욱 비판적인 '소수의 한국인'인 그가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냥 무시하고 지나갈만한 많은 실수와 오점에 대해 지적하고 챙기고 나아가 반성하고 고치려 하지 않을까?
박노자 선생님은 이 사회에 독감 예방 접종같은 존재이다.
독감이 걸려 약을 먹고 입원하고 낑낑 앓는 것 보단 따끔하지만 확실한 예방 접종 한방이 이 사회가 추구하는 '대한민국 실용주의'에 더 부합하는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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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9 11:00 2008/04/19 11:00
BooK ReVieW. l 2008/04/19 11:00



' 느그들은 고생을 모른다. 너무 좋은 세대에 태어났어.'
나의 철없는 소리에 아버지는 혀를 차면서 항상 이런 말씀을 하곤 하셨다.


좋은 세대라..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하지않아도 되고
아버지처럼 5남매가 한방에 끼어서 자는 살인적인 취침을 하지않고
넓고 쾌적한 내방에서 침대라는 서구식 잠자리까지 제공 받는 나이다.
아버지가 보기에는 난 너무 좋은 세대이다.

좋은 세대에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먹고 입고 자란 나이다.
우리이다.
그렇지만 우린 아버지가 하지않은 토익과 토플에 목매달아야하고
고등학교만 나와도 꽤 수준있는 취급을 받으며 얼마든지 성공에 기회가 열여있던
아버지 세대와는 달리 우린 대학을 나와도 서열을 따지고 학벌을 따지게 된다.
선동열 방어율이나 자신의 시력과 똑같은 졸업학점을 받아도
대기업을 떵떵거리며 골라먹는 재미로 들어갔던 아버지 세대이지만
우리는 학점에 자격증에 영어점수까지 거기에다 어학연수까지 갔다와도
대기업 문턱을 아슬아슬하게 넘을까 말까 하는 우리세대이다.



정말 내가 좋은 세대인가?
풍부한 경험과 맘 놓고 독서를 할 수 있어 '문학 소녀 소년'을 누구나 꿈꾸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난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영어공부 해야하는데...'라며
불안에 떨고 있다.
우리 20대는 번번한 정규직 하나 얻기위해서 사회와 회사가 원하는 조건을 충족 시키기위해
문학은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오늘도 서점에서 '희망적인 자기계발서'나 영어 문제집을 고르고 있다.

우리에게 펼쳐진 사회는 소수를 위한 사회이다.
잘못된 경제 정책과 당장 눈앞의 경제 성과를 위한 '대량 비정규직 양산 정책'은
눈에 보이는 경제 지표는 보기 좋게 만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20대들에게는 절망의 신호탄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 이미 20년전에 이런 사회문제를 대상으로 한 책이 나온 것을 보면
일본이 우리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었고 이러한 문제를 빨리 인식했다.
한국이나 일본은 경제적 가치의 최우선 정책이 사회를 얼마나 궁핍하고
불안한 탑처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몸소 느끼고 있으면서도
해결할 정책을 만들거나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려고 하기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더 많은 것을 착취하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이야기만은 아닌가 보다.
'천유로 세대' 라는 책이 이탈리아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을 보면
일반적으로 복지가 잘 되어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는 유럽의 사정도 그리 밝지는 않은 것 같다.
88만원 세대와 부자 나라 가난한 시민에서 좋은 본보기로 제시한
프랑스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처럼은 되기 힘들더라도
앞으로 이 나라를 짊어질 우리들에게 국가를 위한 경제적 희생보다는
이 사회에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정을 풍요를 제공하기 위해 달려가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줄 정도는 되었으면한다.

앞에서 제시한 책에도 물론 다양한 해결책들이 제시되어있다.
물론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대단하신 분들이 쓴 책이지만
내가 생각해본 봐로는 그 해결책들의 현실성은
글쎄....이다


한해 경제가 7%로 성장을 목표로한다거나
세계 10위권에 경제 대국이라는 소리나
국민 소득이 2만달러가 넘었다는 소리보다
.

대한민국에는 비정규직이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진정한 복지국가입니다.
대한민국은 국민연금만으로도 노후가 풍족합니다.
대한민국은 교육비의 70% 이상을 국가에서 지원해줍니다
.

언젠가 이런 말이
9시 뉴스 앵커의 다정한 목소리에서
신문의 앞면을 멋지게 장식할 날이 정말 기다린다.
나는 이런 세상을 누리지 못하더라도
나의 아들만이라도..
그 것이 무리라면 손자만이라도..
꼭 그렇게 만들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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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2 20:09 2008/04/02 20:09
BooK ReVieW. l 2008/04/02 20:09
   
 ' 대한민국은 자랑스러운 한 민족이 살고있는 단일 민족 국가입니다.'
초등학교 때 부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교사님들이 끝임없는 쇠뇌교육 덕분에
마치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진 이 국가가 너무 자랑스럽고
단일 민족 국가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생각하며 혼자 가슴을 쓸어내리던 기억이 난다.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힘들일 있을때마다 우리는 이웃사촌이고 한민족이니 서로 돕고 사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
국가의 위태로움 매번 국민의 단결로 이겨내니 말이다.
잘못은 국가가 하고 수습은 국민이하는
정부와 국가의 잘못의 뒷바라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게는 민족주의는
우리들이 모시는 '그분들'에게는 얼마나 쉬운 통치 이념이 겠는가?
 


이번 태안 반도의 일만해도 그렇다.
100만의 자원 봉사자 동원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대중매체들.
그리고 국민의 단합과 단결만이 해결책이라는 무책임한 정부의 발표는
우리 맘 속 깊은 곳에 박힌 민족주의 심금을 다시 한 번 울렸고
불쌍한 국민들은 기름때가 넘치는 바닷가와 갯벌로 내몰리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의 '그분들'은 현실성 없는 특별법 만드는데 몇 달이 걸렸고
선거 때 한 표 더 받으려고, 이미지 좋게하려고 기름때 낀 바다앞에서 연신 인터뷰나 하고 있었다.

민족주의 노예가 된 한민족.
과연 우리의 민족주의의 출발은 어디서 부터인가?
그 해답은 1895 - 1919년에 중국이라는 몰락하는 구 제국과
일본이라는 신흥 제국 사이에서 우리의 살 길을 모색하기 위해 당시 지식인들이 만들어 낸 것이다.
민족주의의 시발을 보면서
과연 우리의 민족주의가 우릴 위해 진정으로 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잘한것 하나 없다.
물론 국난이 닥칠때 마다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으기에는 딱이다.
하지만 그 것이 국가의 속임수라는 사실을 왜 우리는 아니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을까?
이 뼛 속 깊이 박힌 나의 민족주의는 역사를 전쟁과 국난 극복이 아니면
어떻게 풀어야하는지도 모르게 만들어 버리고.
우리의 문화의 역사는 아예 시장에 널린 채소 쯤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게다가 민족주의와 함께 나온 범아시아주의.
즉 동 서양의 분할은 백인과 황인 이외의 민족은 다 열등하다는 말도 안되는
인종주의를 자아내었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주의로 인해 '가장 잘 뭉치지만 가장 배타적인'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 땅의 제 3세계 외국인 노동자들이 왜 이렇게 천대를 넘은 인권 유린을 받는가?
왜 우리 사회가 군대를 갔다오지 않으면 인정 받지 못하는 병영국가가 되었는가?
왜 이 나라의 역사 교과서는 전쟁영웅만을 위인으로 만드는가?
한국학을 공부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기 위해
귀화한 한국학 교수 박노자가 바라본 대한민국이 가장 그러한 것 들을 잘 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민족주의로 만들어진 남한 정부는
박정희 시대로 들어오면서 병영국가 즉 군국주의의 틀을 가추었다.
그 후 정부 주도하의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우리몸 속에 내제된 인종주의가 활기를 치기 시작했다.



군대를 가야만 인정받는 나라.
귀화하는데 3000만원 이상의 재산과 까다로운 절차가 필요한 나라.
백인은 우대하고 흑인은 무시하는 나라.
경제적 가치와 성공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 다른 모든 가치를 지배하는 나라.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어쩌면 민족주의가 뿌리 내린 그때 부터
우리끼리 강해지고 뭉치자는 민족주의가 오인되어
일본의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고 도왔던 때 부터.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은 결정된 것이 아니었을까?

낡은 민족주의를 버리지 못하면
군국주의도 인종주의도 우리의 뼈 속 깊은 곳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을 것 이다.
국가는 절대 민족주의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부터라도
읽는 '너'부터라도 벗어 나려고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우리 민족이 아니라 더 넓은 의미의 인류애를 실천하기 위해서
군국주의와 민족주의는 훌훌 털어버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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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0 19:55 2008/03/20 19:55
BooK ReVieW. l 2008/03/20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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