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블로그를 처음 했을때가 생각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준희가 고맙다. 준희형이 많은걸 가르쳐줘서 책도 많이 읽을 수 있었고, 나름 생각도 깊어졌고, 정리할 공간을 만들 수도 있었고, 생각을 정리하는 법을 스스로 익혔다.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한 이유는 주변의 친구들이 이제 나에게 그런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했기때문이다. 내가 떠벌리고 다닌적은 없는것 같은데(은근히 떠벌렸다면 한심한 새끼.ㅋ), 주변사람들이 책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해오고, 글 재주를 부려달라고 부탁을하고, 블로그 운영에 대해 묻기도 한다. 뿌듯하다.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꾸준함으로 누군가와 다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이 많이늘고, 지적 수준이 예전에 비해 많이 올랐다는 것은 정말 기쁜일이다. 그래도 부족하다. 아직도 책을 읽으면 '아~ 무슨 말이지?' 라고 나도 모르게 말하면서 나의 '습자지 지식풀'에 한탄하기 일수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 정말 이해하고 싶은데 이해되지않는 것이 있어 소개하려고한다. 혹시나 잘 이해하고 좋은 느낌 받으신 분들 나도 그런 느낌받게 도와주세요~
①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로 반해버린 작가, 김연수의 소설이다. 모든 독자들이 그렇듯,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면 그 사람의 작품들을 찾아보기 마련이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서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라는 책을 빌렸다. 김연수의 '그 많은 상탄 유명작'들을 냅두고 왜 하필 이 책을 골랐냐고 물어본다면 2가지 이유에서이다. 첫번째는 준희가 감탄을 연발하며 꼭 읽어보라며 몇 년전 부터 추천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서이고 두번째는 기본적으로 상을 좋아하지 않기때문이다. 상이야 받으면 좋은 것이기는 하나, 개인적으로 '작품이 훌륭해서 상을 준다기 보다는 상이 있기때문에 작품을 선정한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추천 받은 이 책을 골랐다. 그런데 앞에서 말했듯이 너무 어렵다. 작가로 표현되는 '나'가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격동의 한국사'를 지켜보고 있다. 군부에서 민주정부로 넘어가는 시기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은 아니나 그렇다고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사람도 아니다. 거기에다 과거의 역사적인 사건들까지 (할아버지의 인생, 독일에서 들은 일 등) 합세하면서 나에게는 너무 복잡한 스토리전개가 되었다. 결국 주인공이 '역사의 적극적인 참여자와 비참여자'사이에서의 갈등을 나타내려고 한 소설인 것으로 보이나, 정말 정확한 것은 아직도 모르겠다. 한번 더 읽어 볼 생각을 하기는 했으나, 이해안가는 책은 누구에게나 재미가 없기 마련이다. 평양감사도 제 싫음 안하는 거니까 이 책은 포기하고 잘 이해한 사람들 이야기에 귀를 귀울여야겠다.
② 로쟈의 인문학 서재. 나의 지식창고, '로쟈의 저공비행'의 주인장인 이현우씨가 출판하신 '블룩'이다. 작가는 스스로를 '곁다리 인문학자'라고 부르며 겸손을 피우지만, (더 높으신 분들 입장에서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볼때는 정말 부러운 지식을 가진 사람이고, 또한 지성인이라 할 수 있겠다. 평소에도 그의 블로그를 들어가면 내 자신이 한 없이 부끄러워진다. 공대생의 한계도 있고, 사람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알 수도 없고, 작자는 공부를 오래한 사람이니까 나보다 많이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을 혼자서 한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특히 러시아에 관한 것, 지젝이라던가, 러시아 정세 문학부터 아주 다양하게 논하는 작자에 비해 나는 러시아에 관심도 없었고 아는 것도 없기에 글이 지루했다. 그래도 김훈의 문체에 관한 글, 김기덕 감독의 영화세계에 대한 평론 등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 좋은 글이 었다고 나름 평가해본다. 이 책의 같은 경우 딱히 잘 못된 점은 없는 것 같지만 작자와 나의 관심사 차이로 인한 책 소재의 생소함이 내용의 어려움보다 더 심하지 않았나 싶다. 좀 더 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 주었다면 나같은 '다방면의 문외한'도 여러가지로 새로운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거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개개인의 그러한 생각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우리의 정서가 '남에게는 야박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사회의 분위기를 조장하는데 어느 정도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르는 걸 부끄럽지 않게 인정할 수 있는 그런 '다른 사회'가 정말 가능한 걸까? 자신은 없는데, 열정은 잃지말자. 그 열정이 모여야, 언젠가라도 세상이 변하는 거니까.
나의 현재까지의 대학 생활 중 가장 잘한 일을 하고 있었던 '영월 캠프'때에도 시국은 나의 가슴을 또 답답하게 했다. 다름 아닌 '미디어 법'통과이다. 나는 믿고 싶다. 국회의원 모두가 국민과 국가를 위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라고. 그것의 주체가 야당이건 여당이건, 그것의 사상이 보수적이건 진보적이건 결국 '최종 목적지'는 같다고 믿고 싶다. 이러한 전제하에 생각해보자. '미디어 법'은 이 시대의 화두이자 뜨거운 감자이다. 단순한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의 건강성과 진정성이 함께 연결된 예민한 사안이기도 하다. 그렇게 중요한 법을 왜 이렇게까지 우겨가면서 해야할까? 내가 본 '손석희의 100분 토론'에서는 적어도 야당사람은 여론 수렴의 과정을 주장했다. 대안도 내어놓았다. 그런데 왜?? ...............전장같던 국회 속에서 팔짱끼고 한 발 물러나있던 나경원 의원의 모습이 짜증나리만큼 떠오른다. 여튼 미디어법 관련 기사를 좀 옮겨본다. 보수언론에서는 뭐라고 떠들어대는지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여러분들은 둘 다 정독하셔서 균형있는 시각을 가지시길 바란다. 역시 출처는 로쟈님이다. 원문은 (http://blog.aladdin.co.kr/mramor/2986642)
귀가길 버스에서 읽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엊그제 국회에서 통과된(되었다고 여당에서 우기는) 방송법 개정안이 왜 '부결'된 것인가를 짚어주는 칼럼이다. 헌법에다가 국회법까지 공부시키는 정권과 집권당의 행태에 어떻게 응전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들을 해봐야겠다. 저들은 이미 '전쟁' 모드에 돌입한 듯싶으므로...
경향신문(09. 07. 24) 의사-의결정족수 구별 못한 여당
지난 22일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었다. 투표 종료 선언과 함께 드러난 전자표결 결과는 출석의원 145명에 찬성 142명. 하지만 곧바로 국회부의장은 “다시 투표해 달라”고 주문했고, 그 결과는 출석의원 153명에 찬성 150표. 국회부의장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했다.
방송법 첫 투표 불성립 아닌 부결 민주당 등 야당은 일제히 이 같은 ‘재투표 행위’에 대해 국회법 제92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위반되어 위법하며 무효임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여당과 국회사무처는 국회법 제78조에 근거한 행위로 적법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야당은 첫번째 표결을 통해 이미 방송법 개정안이 부결되었다고 보는 것이고, 여당과 국회사무처는 부결된 것이 아니라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못했기 때문에 첫번째 표결이 불성립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의 차이는 어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까? 의결정족수 규정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 내지 해석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여당의 주장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의결정족수에 관한 규정에서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을 의결을 위한 선결조건으로 이해하고, 조건이 충족되지 못한 표결은 표결로서 인정되지 않는다고 보는 논리형식을 띠고 있다. 반면 야당의 주장은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을 표결이 성립되기 위한 선결조건이 아닌 의안이 가결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는 논리형식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 헌법과 국회법은 여러 규정에서 국회의 회의가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석 의원 수와 국회의 의결이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찬성의원 수를 규정하고 있다. 전자를 의사정족수, 후자를 의결정족수라고 말한다. 따라서 의안을 상정하고 표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의사정족수를 충족해야 하며, 의사정족수를 충족해 일단 표결에 부쳐진 의안이 국회의 의사로서 유효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의안에 따라 헌법과 국회법에서 요구되는 의결정족수를 충족해야 한다.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한 의안은 부결된다.
이렇게 볼 때, 여당과 국회사무처가 첫번째 투표에 대해 주장하는 ‘표결 불성립’은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의 구별에 대한 이해의 부족 혹은 방송법 개정안 가결을 정당화하기 위해 의도된 해석상의 오류라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즉, 방송법 개정안에 대한 첫번째 표결은 의사정족수(재적의원 5분의 1 출석)를 충족했다는 점에서 적법한 표결이었으며, 의결정족수인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과반수의 찬성이라는 요건 가운데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이라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함으로써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해 부결되었다고 하겠다.
재투표는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 따라서 국회부의장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재투표는 그 용어 사용의 적절성 여부에 대한 문제는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이미 부결된 안건을 같은 회기 중에 법률안에 대한 발의 등 의사절차조차 생략한 채 다시 표결처리한 것으로 이는 국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일사부재의의 원칙에 명백히 위반된 것으로 위법하다고 하겠다. 재투표에 대해 여당과 국회사무처가 제시하고 있는 정당화 논거를 보며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이 떠오르는 건 우연일까?
방송법 개정안의 법안처리 과정은 그 결론 도출 과정에서 소수의 의사를 반영하지도 않았고 헌법과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정당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다수라는 수에만 의지하여 진행되었다. 정당화 요건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에 의지하여 이뤄진 행위는 ‘다수의 횡포’이고 ‘다수의 폭력’이며 이는 민주주의 원리와 법치주의 원리에 비추어 어떠한 경우라도 허용될 수 없다.(고민수 | 강릉 원주대 교수·법학)
09. 07. 24.
P.S. '의사정족수'니 '의결정족수'니 하는 법률용어들이 그래도 머리에 잘 안 들어오시는 분은 화투판의 '낙장불입'을 떠올리셔도 좋겠다.
한겨레(09. 07. 24) 일사부재의와 낙장불입
이명박 정권의 언론법 밀어붙이기는 나로 하여금 과거 우리 국회의 날치기 처리 주역, 그리고 사기도박꾼들을 존경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들이 자신이 속한 곳의 최소한 기본규칙을 존중하기 위해 얼마나 분투하고 번민의 밤을 보냈는지를 뒤늦게 깨닫고,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22일 국회에서 방송법 의결 상황은 3단락으로 요약된다. “투표를 종료하겠습니다.”→“어! 통과가 안 됐네.”→“그럼, 다시 투표하겠습니다.” 동네 꼬마들의 홀짝 쌈치기, 양로원 할머니들의 점10 고스톱, 직장인들의 김밥·떡볶이 내기 사다리타기도 그러지는 않는다. 방송법 의결 상황을 꼬마들의 홀짝 쌈치기에 비유하면 이렇게 된다. “까봐!”→“어! 내가 못 먹었네.”→“그럼, 다시 접어.” 구슬주머니로 머리를 맞고, 쌈치기 동네에서 영원히 왕따당할 짓이다.
중·고교 사회 시험에 잘 나오는 일사부재의 원칙은 별게 아니다. 쌈치기, 고스톱, 사다리타기에서도 결과가 나왔으면 받아들여야지, 다시 하자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당연히 아는 원칙이다. 일사부재의 원칙은 바둑으로 치면 일수불퇴이고, 화투판이라면 낙장불입이다. 화투장 뒤집고 나서 패가 마음에 안 든다고 다른 화투장 뒤집어서는 안 된다. 동네 축구에서도 자책골 넣었다고 무효라며 경기 다시 하지 않는다. 더구나 그 경기에서 구경하던 동네 친구들이 간간이 운동장으로 들어와 부정선수로 뛰었는데도 그랬다면, 더욱 할 말이 없게 된다. 지금 한나라당은 그런 동네 축구 상황을 연출해 놓고도, 연장전 선언하고 텅 빈 경기장에서 골 넣고 이겼다고 하는 꼴이다.
공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내용적 다수는 절차적 과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확인돼야 한다. 의사 및 의결정족수를 충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는 소수를 보호하는 기술적 절차도 될 수 있다.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필리버스터가 대표적이다. 필리버스터의 원어인 스페인어 ‘필리부스테로’는 해적·약탈자란 뜻이다. 부정적인 방법이지만, 이런 것으로라도 소수를 보호하는 것은 의미가 있기에 의회에서는 합법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미국 의회의 최장 필리버스터는 미국의 자유와 인권을 상징하는 민권법안을 놓고 이뤄졌다. 보수파인 스트롬 서먼드 상원의원은 1957년 민권법안을 저지하려고 무려 24시간 18분 동안 연설을 해서, 기록을 경신했다. 1964년에도 민권법안을 저지하려고 보수파 의원들이 돌아가며 75시간 동안 연설했다. 필리버스터를 하는 쪽이나 당하는 쪽이나 의사결정의 절차적 과정은 존중하는 것이다.
사기도박꾼도 도박판의 승부 결정 규칙은 존중한다. 자신이 도박판 규칙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한다. 한국 국회의 오랜 전통인 날치기도 의사결정 절차에 대한 존중 때문에 나온 것 같다. 찬성 의원 수를 반올림한 사사오입 개헌, 회의장 바꾸기 전술을 선보인 3선개헌 발의, 의장이 방청석에서 등장한 지난 96년 노동법 통과 등 신기원을 이룩한 날치기도 의결정족수 충족에 대한 존중은 있었다.
그때 그 주역들이 방송법 의결 상황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들은 밤을 새우며 고민하고 번민했던 날치기 통과의 노력에 허탈해하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쉬운 방법이 있는데 허튼 노력을 하고 욕은 욕대로 먹었다고 할 것이다. 사기도박꾼들은 분노할 것이다. 영화 <타짜>를 보니, 사기도박하다가 걸리면 손목을 잘라버리던데, 대놓고 규칙을 어기면 무엇을 자를까? 사기도박판만도 못하고, 과거의 날치기를 그리워하게 하는 국회의 방송법 밀어붙이기. 민주주의의 조종이 정말 울리고 있다.(정의길 국제부문 선임기자)
좀 전에 부산 뉴스를 보니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한나라당 텃 밭인 부산에 내려와 '미디어법 5적'을 퇴치하는 운동을 벌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부산시민들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지역주의는 사람들의 눈을 흐리는 정도가 아니다. 정말 '바보 멍충이'로 만드는 것 같다. 이렇게 잘 못된 일에도 한나랑다의 빠돌이인 당신들이 참 대단한 것 같다.
시험기간이라 최대한 마음을 추스르려 해도 아직 그것이 잘되지는 않는다. 나도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살아야지. 닥친 현실에 급급해 또 세상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고 있다. 나도 그냥 한날인간이다.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다. 그래도 가신 분이 남긴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본 기사라서 이렇게 또 로쟈님의 글을 옮겨온다. 그분이 남긴 뜻을 지켜야 하는데... 역시 그 중에서도 몇 개는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민주주의 하고 싶을 걸 못할 수 있다는 걸 배우는 거다.' 라는 그 말이 참 인상적이다. 정치가 궁금하다며 나에게 물어보는 친구가 생겼다. 진짜 친한 친구에겐 말하지 말아야 하는데...세상은 이 더 더럽고 고통스럽고 복잡해 보일 텐데...이제 와서 20분간의 짧은 담소를 후회하는 나는 찌질이다.
한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국민장이 치러지는 기간이었고, 애도와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게다가 개인적으론 몇 편의 원고를 억지로라도 써야 했던 한주였다. 주말이라고 한숨 돌릴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감정은 추스리고 기력은 다시 곧추세워야 할 시간이다(요즘은 피로도 만성적이 돼가는 듯하다). 넋을 놓고 있기엔 다급한 일들이 너무 많고 고인의 뜻을 계승하는 일도 앉아서 되는 일은 아닐 것이기에. 주말이면 북리뷰 기사들을 정리해서 올려놓곤 했는데, 이 주에는 휴업해도 좋을 정도다(개인적으론 두어 권 정도만 관심도서로 머릿속에 입력해놓았다). 대신에 향후의 과제를 짚어보는 기사와 칼럼을 하나씩 스크랩해놓는다(한겨레21의 특집기사 가운데 '시스템의 노무현 죽이기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5023.html' 등도 참조).
경향신문(09. 05. 30) 민주주의 완성·국민 통합 ‘노무현이 남긴 꿈’
‘그’는 떠났고, 이제 ‘우리’가 남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는 29일 그가 떠남으로써 우리 안에서 부활했고, 그 꿈은 미완인 채로 ‘산 자’들의 어깨에 남겨졌다.‘바보 노무현’이 남긴 과제는 무엇인가.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완성’과 ‘국민 통합’으로 요약된다. 인권·민주화를 가치로 평생 권위주의와 지역의 벽에 맞서고 ‘균형 발전’을 꿈꿨던 ‘노무현 정치’의 궤적 때문이다. ‘함께 잘사는 세상’이란 어릴 적 출발점부터 대통령 퇴임 후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희구까지 ‘역사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다.
◇필생의 신념 ‘민주주의’ 노 전 대통령이 생의 마지막까지 고민한 화두는 ‘민주주의’였다. 퇴임 후 참모·학자들과 함께 공동연구를 위해 만든 인터넷 카페는 그 고민을 모색하기 위한 공간이었다. 여기서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다.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며 ‘진보의 미래’를 모색하는 작업을 했다. 퇴임 후 그가 믿었던 인권과 탈권위주의의 ‘정치 개혁’이 허물어지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우향우’ 현상에 대한 고뇌가 배경이다.
국민에게 돌려준 검찰·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독립성은 다시 흔들리고, 참여정부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된 정경유착과 권위주의 청산도 여전히 허약하다. “우리는 역사가 돈의 편이 아니라 사람의 편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길을 가는 것”이라던 사회적 약자의 정치·경제적 ‘인권’에 대한 가치도 부정당하고 있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계승해야 할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은 세 가지”라며 “인권,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 보호다. 이는 다름아닌 민주화 시대의 가치고 여전히 미완”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를 풀어가는 방법은 그가 늘 “새 시대의 맏형”이고 싶었던 것처럼 ‘대결과 대립의 민주주의’가 아닌 대화와 타협의 ‘협치의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는 내 뜻을 관철하는 방법이 아니라 내 맘대로 못하는 걸 배우는 것, 내 마음에 다 들지 않지만, 그러나 일보 진전했다는 걸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2006년 4월3일 제주특별자치도 보고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필생의 과업 ‘국민 통합’ 대통령 재임 동안 그가 심혈을 기울인 과업은 정치개혁과 함께 국민통합이었다. “격차는 갈등을 불러오고 갈등은 분열과 대립으로 이어진다. 분열한 역사는 모두 망하거나 엄청난 불행을 초래했다”(2005년 3월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는 인식이 출발점이다.
이는 네 차례나 낙선하면서도 끊임없이 부산에서 영·호남 지역주의에 도전한 것처럼 ‘지역주의 타파’와 이를 위한 ‘균형 발전’, ‘남북 평화’에 대한 희원으로 표출됐다. 또 ‘외국인정책기본법’ 제정 등 “우리나라 국민이 아닌 사람에 대해 인권을 존중하고 이를 확대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진보”(2006년 5월 외국인정책회의)라는 지역·계층·성별·세대·인종을 넘어선 통합과 공존에 대한 바람이었다.
경기대 손혁재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지역대결 구도의 화두를 가장 붙잡고 싸운 분”이라며 “흡족할 만한 성과는 아니지만 분권과 균형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과거청산 작업을 시작한 것도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보수진영의 전원책 변호사는 “우리사회에서 이념·정책을 달리하는 측에서 우선 상대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대연정’까지 이야기했지만 문민정부 이후 4기 동안 내내 상대를 존중하지 않았다. 원인은 패거리 정치”라며 우리사회의 소통 노력과 파당적 정치의 혁신을 주문했다.
명지대 신율 교수는 “우리사회가 변화해야 하고, 사회적 변화는 이성적 과정이어야 한다”면서 “슬픔에서 벗어나 내 박탈감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고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제도권에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시민이성’과 ‘시민권력’의 성장을 당부했다.
경희대 도정일 명예교수는 “민주주의의 가치와 원칙을 존중하는 문화가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한 사회는 언제든 무너진다”면서 권력기관 중립화 등 제도적·법률적 개혁의 복원 필요성을 제기했다.
중앙대 강내희 교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 흐름을 종식시키고, 그 흐름에 사람들이 동참하도록 하는 게 노무현 정부가 못다 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한 유지를 강조했다.(김광호·송윤경기자)
한겨레(09. 05. 30) 문명사회는 아직 멀었다
마음이 몹시 아프다.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하기는 선물로 받은 시계를 수사가 시작될 때 버렸다는 참으로 치욕스러운 얘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자존심 강한 사람이 저 모욕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게 아니다. 아무리 꺾어버리고 싶은 정적(政敵)이라도 그렇지 자신의 전임자에게 이런 모질고 야만적인 공격을 해댄다는 게 과연 문명한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가.
결국, 우리 사회가 문명사회로부터 멀다는 얘기인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적어도 인간사회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절과 법도마저 무너져버린 것이 분명하다. 하여튼 이 사회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성숙한 사회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 리가 만무하다. 우리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살고 있음이 확실하다.
노일전쟁 때의 일화다. 노일전쟁의 영웅으로 지금도 일본인들이 기리는 육군대장 노기 마레스케는 자신의 두 아들을 포함한 수많은 병사의 희생 끝에 여순 함락에 성공했을 때, 러시아군 지휘관 스테셀의 항복을 받는 자리에서 적장(敵將)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지극히 공손한 자세로 대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패장이 무장해제를 당하지 않고 회담장에 들어오도록 배려했고, 러시아군의 용기와 전술의 훌륭함을 아낌없이 칭송했다. 게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스테셀 장군이 군법회의에서 사형선고를 받자, 노기 대장은 파리 주재 일본 무관을 통해 스테셀 구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엄혹한 상황에서, 게다가 자신의 아들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상대에 대한 예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정신적 기율이야말로 인간을 드높이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리고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인문적 교양과 문화적 축적의 결과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균형감각 역시 그러한 축적 없이는 불가능한 자질이다. 지금 특히 평범한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꼈던 전직 대통령의 비상한 죽음을 깊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하여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는 말과 글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은 극히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지식인들에 의한 공식적인 추도문은 공정하고 균형 잡힌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고인에 대한 추모의 감정이 간절할지라도 사사로운 개인이 아니라, 공적 인물에 대한 추도문이라면 충분한 예를 갖추되 그 생애와 업적에 대한 묘사는 엄정한 것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실 공적 인간의 죽음을 기록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가리키는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서구 선진사회의 언론들이 주요 인물의 부음을 전할 때 거의 반드시 짧지 않은 추도문을 게재하여 그 인물에 대한 때로는 냉정하기까지 한 평가를 기술하는 것은 공적 공간에서의 인간 행동이 갖는 의미의 무거움을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 노무현과 그의 이상은 여러모로 매력적이고 찬탄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지도자로서 그는 좀더 신중하고 지혜로워졌어야 할 대목이 많았다. “대통령 하기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거나 “권력이 국가에서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은 국가의 최고 지도자로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본심이야 어쨌든 그는 서툴고 경솔한 일처리 방식으로, 아마도 역사상 최악의 정권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큰 정권의 탄생에 기여했고, 그 때문에 마침내 자신도 희생되는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09. 05. 30.
P.S. 기사에서 '시민이성’과 ‘시민권력’의 성장이 요청된다는 대목, 칼럼에서 '인문적 교양'의 축적이 필요하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국민통합'은 선결과제들의 해결 이후에나 가능할 일이다). 하루 아침에 될 일은 아니다.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더 바삐 움직일 때다...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괜찮은 영화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어서 그런지 '류시화씨가 소개해주신 감성적이고 철학적인 나라' 인도에 대해서 현실적인 접근을 하고 싶은 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물론 인도 영화는 아니지만 배경이 인도라서 그런 거 같다.)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종교에 의한 분열'이 한 때 인도의 사회문제로 거론된다. 영화에서는 짧고 강한 영상들로 마무리를 하기 때문에 정확한 정황과 상황을 알 수가 없다. '나의 지식 보물 창고'인 로쟈님의 블로그를 보다가 내가 몰랐던 인도에 관한 기사가 있어 잠깐 보도록 하겠다. 인도도 우리와 같은 아픔을 간직한 나라였다니... 나에게는 정말 새로운 사실이다. 원문은 (http://blog.aladdin.co.kr/mramor/2760646 ) 이다.
인도 관련서들이 자주 눈에 띈다. 원래 자주 출간돼왔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난달에 이어서 이번달에도 어김없다. 인도사 전공자인 이광수 교수가 옮긴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산지니, 2009)가 이버넹 나온 책이고, 저자 우르와쉬 부딸리아는 인도의 페미니스트 역사가이다. 똑같은 '분단'의 경험을 안고 있는 처지인지라 우리로서도 그들의 '침묵의 이면'이 남 얘기로만 들리진 않는다.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연합뉴스(09. 04. 02) 인도-파키스탄 분단 속에 숨겨진 역사
브릭스(BRICs)의 한 축으로 중국과 함께 세계의 신흥세력으로 떠오르는 인도아대륙(亞大陸)은 한반도와 한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가 일본 강점기를 벗어나면서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었듯이 인도아대륙도 영국의 오랜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힌두의 인도와 무슬림의 파키스탄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분단 당시 불과 수개월 만에 1천200만명이 인도나 파키스탄으로 이동했다. 무슬림은 서쪽에 있는 파키스탄을 찾아갔고 힌두와 시크는 동쪽에 있는 인도로 왔다. 이동에는 학살이 뒤따랐고 영양 결핍이나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분단 당시 이런저런 이유로 죽은 사람의 수는 100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또 7만 5천명의 여성이 납치돼 다른 종교의 남성이나 같은 종교의 남성에 의해 강간당한 것으로 추정됐으며 수천수만이 넘는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그러나 분단의 이런 측면은 인도 역사 속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침묵의 이면에 감추어진 역사'(산지니 펴냄)는 인도 역사가인 우르와쉬 부딸리아가 인도-파키스탄 분단을 경험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목 그대로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 감춰져 주목받지 못한 역사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책이다.
현재의 파키스탄 라호르 지역에서 살다가 분단 당시 인도로 넘어온 이산가족의 후손인 저자는 분단을 경험한 70여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이들의 목소리로 직접 역사를 전한다. 이야기는 저자가 분단 때 외할머니와 파키스탄에 남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자신의 외삼촌을 찾아 파키스탄을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외삼촌은 40년 만에 처음 만난 조카에게 당시 누나를 따라 인도로 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정치적 결정이 자기 삶에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시간이 좀 지나 '아 그게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늦어 되돌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땅에 계속 살기 위해 외삼촌은 이슬람교도로 개종했지만, 그에겐 '힌두'라는 꼬리표가 계속 따라다녀야 했고 그는 국경 너머 인도를 고향으로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다고 토로한다.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또 분단 과정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에도 주목한다. 힌두와 무슬림이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치욕을 주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상대 종교의 여성을 납치ㆍ강간했으며 개종을 강요하기도 했고 이를 피하기 위해 여성들은 스스로 우물에 몸을 던지기도 했다.
60대 중반의 바산뜨 까우르라는 여성은 1947년 3월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 90명이 넘는 여성이 무슬림을 두려워하며 우물 안으로 몸을 던지는 상황을 직접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그녀의 아들은 아버지가 누이들을 죽이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매우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전하며 누이의 용기와 누이의 '순교'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치기도 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을 통해 책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분단이 유용한 정치적 책략으로 간주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땅에 터전을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한 의미를 가져다주었는지, 그 결과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그 사람들에게 분단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져다주는지,(중략) 혹은 그 당사자가 남성, 여성, 아이들, 소수자라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 모든 문제에 대해 우리는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는 것이다"(16쪽) (황희경기자)
09. 04. 02.
저자의 서문이 참 인상적이다. 정치가 우리 삶에 중요함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신문을 보다가도 혹은 뉴스를 보다가도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이 '왜 이리도 쓸 때 없고 허황된 명분을 쫓는 걸까?' 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사실 종교가 무엇인지 이념이 무엇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것이 누군 가에게는 목숨보다 중요하거나 진리가 될 수도 있다. 근데 우리가 함께 웃으면서 같이 지내오던 친구보다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정말 신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허황된 존재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헐뜯어야 할까? 신은 내 눈앞에 단 한번도 나타나주지 않았지만, 그들은 내 옆에 있고 우리 할아버지 옆에서 같이 광복을 맞이했으며 잃어버린 나라를 찾으려고 함께노력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사람이다. 누군가의 말씀보다 누군가가 책에 쓴 이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함께 해 온 존재라는 것이고 가족이었다는 것이다. 급속도로 냉각된 남북관계, 서로가 한 발짝 물러서서 다시 가족이 되는 날이 가까워 졌으면 한다.
한 사람의 역사에서
한 나라의 역사에서
아픔 없는 사람도, 나라도 없는데
그 상흔들이 사실 사람이 사람에게 남긴 것이고
해법 또한 사람을 통해서만 풀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문제이니
사람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잃지 않아야 되는데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냉소는 쉽지만
해결책도 대안도 주지 않으니 그래도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부터라도 추스려야되려나 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많은 경우 진리인 모양이에요.
인도라는 나라에도 이렇게 아픈 역사가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새벽녘에 독서 목록에 또 한 권 추가하고 갑니다.
(언제 읽을지는... ^^
평온한 주말 되세요~. (_ _)
nod 님의 말처럼 항상 자신부터라도 추스려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언제가 내 옆에 있는 친구가 이런 생각을 이해해줄 것이고 이름없는 누군가가 이글을 보고 동의 해줄지도 모를일입니다. 물론 행동하지못하는 소심한 한 인간의 쓸때없는 말장난의 하나로 치부될 수도 있지만 이런 글을 통해서 스스로라도 추스릴 수 있어 참 다행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블로그는 참 저에게 많은 걸 제공해 주는군요.
좋은 주말 되세요~
다시 복학하여 대학을 다니니 교육에 대한 생각이 점점 많아진다. 하루에 잠깐이지만 스스로가 건방지게 '이렇게 어려운 내용, 영어로만 수업을 하니 내가 다니는 학교가 정말 좋긴 좋은가 보다.'하며 나도 모르게 오만해 질 때가 있다. 내가 ‘지양’하고 싶은 가치관도 내가 속한 집단이 ‘지향’한다면 그것이 나도 모르게 내 몸 속에 스며들게 된다는 말을 몸으로 직접 느낀 경우이다. 대한민국은 거의 '대놓고 서열 교육 체제'로 접어 들었다. 솔직히 말한다면 나에게 손해 볼 것은 없다. 나는 명문대에 들어왔고 여기서 밀려나지 않고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살아 남기만 한다면 내가 사는 것에는 아무 지장이 없다. 하지만 사회는 혼자만 사는 곳이 아니고 나의 세대에서 끝나는 것은 더 더욱 아니다. 우리는 항상 다음을 생각해야 하고 현재와 과거는 다음을 잘 설계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된다. 물론 그러한 사례가 우리의 것에만 국한 될 필요는 없다. '국가 경쟁력 1위' 핀란드의 성공한 공교육 사례를 로쟈님의 블로그에서 발견하고 느끼는 봐가 있어 이렇게 옮겨 놓는다. (이제 내가 읽은 책에 대한 글을 쓸 때가 되었는데...정말 부끄럽게도 요즘 책을 읽지 않는 내가 한심하다.) 원문은 (http://blog.aladdin.co.kr/mramor/category/2656017?communitytype=MyPaper ) 이다.
“우리나라에 영재교육은 없다. 아주 똑똑한 천재를 키우는 것보다 뒤처진 아이들을 함께 이끌고 가야 한다는 게 우리의 정책이고 원칙이다.”(마리아 타우라 핀란드 미래위원회 위원장)
“뛰어난 학생이 아니라 가장 약한 학생을 지원하는 것과 같은, 근본적 의미의 평등과 형평성이 핀란드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평등이란 어떤 지역에 살더라도 동등한 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요우니 발리예르비 핀란드 이베스퀼라대학 교수)
집 같은 분위기, 이주 학생엔 모국어 교육
실제로 그랬다. 우리가 방문한 핀란드종합학교(초·중등학교)에서 이런 핀란드의 교육적 특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헬싱키 라토카르타노종합학교는 유네스코가 인정하는 친환경 학교다. 학생 친화적인 건물을 짓기 위해 디자인 공모전까지 거쳤다는 목조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어두운 북유럽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고 안온한 느낌이 들었다. “건물 디자인의 핵심 목표는 가정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사투 혼칼라 교장은 설명한다. ‘돌봄과 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서의 학교’라는 이 학교의 교육관을 디자인에 반영해달라는 교사들의 요구에 따른 건물이라는 것이다. 유치원에서부터 9학년까지 모두 420명의 학생들이 있는 이 학교에서 눈에 띄는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학습장애를 가진 어린이들과 외국인 어린이들이 함께 공부하는 이 학교에선 장애아나 외국인 또는 뒤떨어진 아이들에 대한 배려가 남달랐다.
핀란드에선 1970년대 이래 장애아와 비장애아 등 모든 차이를 가진 아이들을 통합해 교육하는 게 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자리잡았다. “학생들이 공동체 안에서 느끼는 인격적 자존감과 학습을 위한 흥미와 동기, 앞서는 학생과 뒤지는 학생 간의 인격적 교류가 교수나 학습의 효율성보다 더욱 중요하다는 확고한 교육학적 관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안승문 웁살라대학 객원연구원은 지적한다. 그러나 장애아와 비장애아의 완전한 통합으로 가기까지 아이들의 상황을 섬세하게 살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참관했던 7∼9살 집중장애아들을 위한 수업에는 장애아 10명을 위해 정규교사 1명과 보조교사 2명이 배치돼 있었다. 이 반 아이들은 30분간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블록 쌓기 등 집중훈련에 좋은 놀이를 한다.
장애아를 위한 교실에는 아이들이 집중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도를 낮추기 위해 전등에 가림막을 씌워놓았다. “아이들의 집중도가 향상되면 정규반에 보내기 시작해 점차 수업 시간을 늘려간다”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특수반 담임 교사는 설명했다. 이 반의 미러는 상태가 좋아져 하루 5시간씩 정규반에 가서 수업을 듣는다. 정규반으로 가는 것은 아이들의 상태를 봐서 교사가 부모와 상의해 결정한다. 특수교육 대상자 역시 교사가 학부모와 협의해 정하지만, 중증 장애가 있는 학생이라면 병원의 진단을 받아 지방자치단체에 추가예산을 요구할 수 있다.
외국인 학생들에 대한 배려 또한 남달랐다. 8∼9살 아이들이 수학을 공부하는 한쪽에서 탄자니아 출신인 토미는 모국어를 공부하고 있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교육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정신에 따라 핀란드에선 외국계 학생들에게 모국어 수업을 제공하도록 돼 있다. 일반적으론 각 자치단체 교육청에 등록된 모국어 교사들이 학교를 방문해 수업을 하지만, 학생 수가 아주 적은 경우엔 학생들이 다른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기도 한다고 혼칼라 교장은 설명했다.
무학년제·집중학습으로 ‘속도 조절’
특별한 배려를 받는 것은 장애아나 외국인 어린이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연령대 정규반 수학 시간. 교실에는 듬성듬성 빈자리가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담당 선생님은 일부 뒤처진 아이들을 다른 선생님이 집중지도를 하러 데리고 나갔다고 설명했다. 교실 밖을 나오니 특수교육 담당 선생님이 아이 4명에게 열심히 동전으로 수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었다. 이렇게 뒤처지는 아이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니 국제학생평가에서 하위 수준의 성적을 거둔 학생의 비율이 가장 낮을 수밖에 없다.
이렇듯 학생들의 처지를 배려하는 유연한 대응이 가능한 이유는 교사들에게 주어진 자율성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가 정한 교과과정을 따라야 하지만 학교는 자체 교육 내용을 조직할 자유가 있다”고 혼칼라 교장은 설명한다. 이에 따라 이 학교가 학생들에게 최상의 학습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무학년제도다. 각 학생은 자신의 학습 내용과 학습 속도를 선택할 자유를 갖는다. 다만 그런 선택을 통해 9학년을 마칠 때에는 국가가 정한 교육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교사 2~3명이 팀으로 수업
“무학년제도란 핀란드의 발명품이 아니라 이미 1930년대 미국과 스웨덴에서 시작됐다. 모든 아이들은 배울 능력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전진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게 이 제도의 철학”이라고 설명한 혼칼라 교장은 핀란드에선 1990년대 이래 이 제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무학년제도에 따라 학생들은 각각 개별화된 학습목표를 갖게 되며, 그 목표는 교사와 학생 그리고 부모의 3자 대화에서 결정된다. 교사와 학생은 수시로 합의한 목표에 도달했는지 스스로 평가하고, 목표에 미달했다고 판단하면 새로운 학습 방식을 적용하는 등 다시 목표 달성을 위한 도전에 나선다.
무학년제의 유연한 학습이 가능하려면 교사들의 협력이 긴요하다. 라토카르타노종합학교에서 우리가 참관한 어느 교실에도 선생님 혼자 있는 곳은 없었다. 늘 두세 사람이 함께 팀을 구성해 가르쳤다. 정규교사 외에 별도로 뽑은 보조교사들이 있지만, 정규교사가 다른 교사의 수업에 보조교사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교실에는 혼자 뒤처진 아이는 없다. 한 교실 안에서 대부분의 아이가 수학을 공부하더라도 한쪽에서 탄자니아 출신의 어린이가 모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것 역시 이런 팀 티칭이 있기에 가능하다.
이 학교에서는 팀 티칭을 통한 선생님들 사이의 협력 못지않게 교사와 학생 사이, 학생과 학생 사이의 협력을 중시한다. 학습그룹을 서로 도와주는 방식으로 구성하도록 한다. 이 학교가 중시하는 학습 방식이 모둠 수업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 따라 학습 속도는 빠르기도 하고 늦기도 한다. 그렇지만 모든 아이들이 함께 갈 수 있게 배려하는 게 교육이다. 우리는 개별 학생이 아닌 모둠을 학습의 기본 단위로 삼는다. 모둠 속에서 서로 도와가며 배우는 일은 사회화 과정에서도 긴요한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혼칼라 교장은 설명했다. 이 학교가 유치원생과 초등 1·2학년생들을 한 건물에 배치한 것도 같은 뜻에서다. 유치원생들은 초등학생들과 함께 지냄으로써 자연스레 학교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초등학생들은 동생들을 돌보는 등 공동체적 삶을 배우게 된다.
» 산수 과목에서 뒤처진 아이들을 특수교사가 따로 데리고 나와 가르치고 있다.
“선행학습은 금물, 괜히 산만해지죠”
모둠을 중시하는 핀란드에선 선행학습을 금물로 여긴다. 헬싱키에 사는 한국 동포 곽수현씨는 선행학습을 시켰다가 학교에 가서 골칫거리로 전락했던 한 동포의 아이를 예로 들었다. “다른 핀란드 아이들은 1시간 걸려 푸는 문제를 5분 안에 다 풀곤 나머지 시간에 친구를 괴롭히고 산만해져 결국 문제학생으로 지목됐다”는 것이다. 선행학습이 아이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모둠의 분위기를 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핀란드종합학교의 저학년 단계에선 언어 교육만큼이나 집중력 교육을 중시한다. 집중력이 미래의 학습 능력을 좌우한다고 보아서다. 라토카르타노가 집중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에게 특별 배려라 할 만큼 신경을 쏟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고 집중장애 담당 특수교사는 설명한다. 그런 교육이 아이뿐 아니라 앞으로 핀란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것이다.(헬싱키(핀란드)=글·사진 권태선 한겨레 논설위원)
09. 03. 01.
대한민국 2%가 이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는다. 나쁜 방법은 아니다.그 2%가 정말 자신의 사리사욕을 배제하고 나머지 98%에게도풍족은 아니더라도 '살만한 삶'을 보장하는 전제하에서는 나도 인정하고 싶다. 하지만 모든 이념을 떠나 누가 봐도 대한민국은 그러하지 못한 나라이다. 그러한 잘못의 근본은 '무한 경쟁'을 유도하는 교육정책에서부터 출발한다.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 한자는 버리고 가는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과 상반되는 핀란드의 사례를 보면서 '진정한 공교육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 핀란드의 사례를 한국에 고스란히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으므로 '한국형'으로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다.)
몇 일전 만난 고등학교 후배가 나에게 '그래도 선배는 대한민국 1% 자나요.'라는 말을 했다. 사실 거기서 버럭 화를 내고 싶었지만 너무 오랜만에 만난 후배라 술 한잔과 함께 화를 삭혔다. 우석훈 씨에 말에 따르면 난 정확하게 대한민국 2%이다. 근데 난 2%가 싫어서 2%에 들어왔다. 들어오려고 발버둥쳤다. 왜냐하면내가 본 대한민국은 '2% 밖'에서 '2% 안'을고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2%와 나머지 사이의 벽을 허물지는 못 하겠지만 벽돌은 한 두 개정도 뺄 생각이다. 그 뒤의 일은 그 뒤의 사람의 몫이다. 하지만 모든 변화가 작은 실천에서 출발하듯 나의 노력은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무엇이든지 급진적이고 빠른 것은 좋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것을 방치하는 것은 더 나쁜 일이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교육정책이 잘 못된 것임을 알고는 있다. 지나친 경쟁과 말도 안 되는 사교육비, 무너지는 교정을 보면 우리는 매일 느끼고 깨닫고 있다. 교육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책의 혜택을 모두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의 국가의 의무이고 역할이자 이 땅의 주인인 우리들이 받아야 할 권리이다. 지금과 같은 형태라면 대한민국은 앞으로의 100년을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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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우면 연락을 하던가
2010/03/15 01:00밥을 사던가 소개팅을 시켜주던가
셋중 하나를 해라
니 시험이나 잘치고 연락해라.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