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방영되고 있는 사극 ‘선덕여왕’의 인기가 회를 거듭할수록 더해지고 있다. 시청률 40%를 뛰어넘은 ‘선덕여왕’의 매력은 무엇일까? 여태껏 우리의 사극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신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특이함을 가졌으며 연기자들의 적절한 연기 등의 요인을 들 수 있겠다. 그런 많은 요소들 중에서도 당연 으뜸이라고 할만한 것은 역시 ‘미실과 덕만의 갈등 구조’이다. 덕만의 출생 비밀이 밝혀진 뒤 ‘일식에 관한 심리전’에서 덕만 공주가 미실을 완벽하게 속임으로써 드라마상에서 둘 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들어났고 그 것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식이 발생하는 날을 정확하게 맞춰서 자신의 지위를 입증한 덕만 공주는 미실과는 달리 격물이 정치에 이용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현상이라고 지적하며 첨성대를 건립을 주장하고 격물과 정치의 분리를 시도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도 표현이 잘 되고 있지만 책력을 알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삼국시대에서는 엄청난 권력이었다. 책력이란 현재의 천문과학의 일종으로 현재에는 ‘당연한 것’ 정도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삼국시대만 하더라도 국민들은 ‘무속 신 또는 부처님’에 의해 결정되는 신기한 현상으로 여겨왔다. 그렇기 때문에 덕만 공주의 라이벌 격인 미실도 라이벌만큼의 위치로 성장하기 위해 책력을 이용하였고 덕만 공주 또한 책력을 통해 일식을 예상함으로 자신의 공주지위를 찾게 되었다. 이처럼 격물, 즉 과학적인 사실이나 이론이 정치와 권력에 이용되었을 때 과학 그 자체의 순수성은 왜곡되고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덕만 공주는 ‘악용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백성들과 천문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공유하고 백성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라는 것이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다. 선덕여왕의 시대는 천년 이상이라는 세월 전에 막을 내렸지만 ‘격물의 악용’은 지금도 우리사회에 만연한 문제점이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란이 ‘악용의 가장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황우석 어페어’라고 불릴 만큼 범 국민적 이슈가 되었던 논문 조작사건은 당시 국가 전체가 혼란스러울 만큼 큰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 악용 했음을 잘 방증해주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느 과학자 한 명의 논문 조작 사건일 뿐이다. 여느 나라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과학계 스스로의 ‘정화 시스템’에서 해결 될만한 일이 국가적인 혼란을 야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황우석 박사 자체가 과학자를 뛰어넘어 정부와 언론이 인위적으로 조작한 ‘국가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황우석이라는 존재는 90년대 후반에만 해도 ‘복제 동물분야의 전문가’정도로 취급 받던 생명공학에서도 ‘주변인’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복제 소 영롱이의 성공으로 그는 정부와 언론의 관심을 동시에 받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웅화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어서 출범한 참여정부 때에도 정부 및 여당 그리고 국민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지원’으로 마침내 배아줄기세포까지 전문 분야확장을 성공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는 그의 성공으로 지역과 계층, 정당과 이념 그리고 남녀노소의 구분을 뛰어넘는 국민적 영웅이 된다. 그렇다면 권력은 왜 그를 택했을까? 이유인 즉 슨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엄청난 좌절감에 빠진 국민에게 황우석의 존재는 미래 한국이 나아갈 길을 정확히 제시해주는 구세주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의 무능함을 ‘과학자의 영웅화’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어리석으면서도 꽤나 효과적이었던 해결책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차별적인 황우석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황우석의 연구는 비판은 없고 칭찬만을 받는, 검증단계조차 거치지 않고 언론에 먼저 알려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국가의 개입은 연구 업적이 상당부분 왜곡 또는 부풀려지는 것을 조장함으로써 과학계의 내부검증을 거치지 못하게 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그 약점은 상처로 커지게 되었고 치료되지 못한 상처는 곪아서 터져 한 때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지게 한 ‘황우석 사태’를 초래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의 영웅’이었던 황우석 박사는 현재 재판에서 징역 4년을 구형 받고 연구도 국내에서 할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이다. 결국 국가의 개입이 있었지만 잘못의 과학자 ‘개인의 몫’으로만 돌아가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이러한 ‘과학에 대한 권력의 작용’이 우리나라에 국한 되지만은 않았다. ‘황우석 사태’가 막 일어났을 때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했던 외국의 사례를 떠올리며 자성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 기억이 난다. 간단한 예로는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생체실험을 들 수가 있다. 권력으로 악용된 과학이 어디까지 독해질 수 있나를 보여주는 끔찍한 일들이었고 그 끔찍한 피해를 우리는 겪기까지 했었다. 좀더 구체적인 상황을 찾아보자면 소련의 ‘사회주의 과학의 영웅’이었던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이하 리센코)와 북한에서 ‘주체과학의 영웅’으로 대접받던 김봉한이 있다.

리센코는 스탈린 시대의 소련 농 생물학자로써 멘델의 유전학설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소위 ‘리센코주의’를 주창한 사람이다. ‘리센코주의’의 내용을 살펴보면 개인적으로 해석할 때에는 용불용설과 비슷한 맥락이 있는 듯하다. 주요 골자는 유전자라는 입자적인 것만으로 유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환경조건을 변화 시킴으로써 생물체 내의 물질대사 형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유전성의 변경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획득 형질론’이다. 감봉한의 경우는 1960년대 초에 원자물리학적 방법으로 한의학과 관련된 경락의 존재를 증명한 이른바 ‘산알 이론’을 펼쳤다.
특히 리센코 학설의 후유증은 대단히 컸다. 먼저 과정을 살펴보면 서구와 반대되고 독자적인 것을 추구하기 원했던 당의 공식채택을 받음으로써 과학적 증명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소비에트만의 진리’로 받아들여 졌다. 이 여파로 소련 내의 유전학 관련 연구가 중단되었고 멘델과 모건의 유전학을 고수했던 학자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정치 수용소로 들어가게 되었다. 훗날 리센코주의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폐기되었지만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켜져 온 탓에 소련의 급진과학운동이 서구에 비해 10년이나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농업 실패로 수많은 인민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발생하였다.
그래도 우리의 경우에는 리센코주의의 피해와는 달리 먹고 사는 것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좀 덜해서 불행 중 다행이라 할만 하다. 물론 미래 핵심 산업인 BT 관련 ‘될 성 싶은 떡잎’을 잃긴 했지만 한번은 실수라고 치며 넘어 갈 수는 있다. 그냥 넘어간 것도 아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자기비판도 했고 반성도 했다. 또 똑똑한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외국의 사례까지 읊어가며 ‘우리 다시는 이런 바보 같은 짓 하지 맙시다.’라며 공공연히 떠들었다. 그런데 황우석 사태가 채 해결도 되지 않은 이 시점에 ‘나로호’라는 새로운 기계가 국민들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혹자는 ‘나로호 개발과정에는 황우석과 같은 영웅 만들기 과정이 없지 않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다. 사람은 없다. 사람은 없지만 그 자리를 나로호라는 우주 발사체가 대신하고 있다. 과학자 자체를 권력에 이용하는 것은 한 번 당했으니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지만 결국 그 대상이 사람에서 사물로 이동한 격 밖에 되지 않는다. 과자 봉지는 좀 더 화려해졌는데 과자 맛은 결국 이전이랑 달라진 게 없다.

총 개발비로 5000억 원이 투여된 나로호의 개발은 어마어마한 개발비와는 어울리지 않게 우리만의 자체 기술이 아니다.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발사체’라는 수식어로 우리의 뛰어난 우주 항공기술을 뽐내려고 노력하지만 1단 엔진은 기술력의 부족으로 러시아가 제작했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의 우주 발사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팔과 다리’가 따로 놀고 1단, 2단 엔진이 한번도 함께 실험하지 않은 발사체의 실패는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국가는 매번 문제점이 발생해 발사 일이 연기되는 와중에 도 확실한 원인 규명을 하기보다는 어설픈 변명과 ‘곧 발사할 것’이라는 말로 국민들의 불안을 달랬다. 하루라도 빨리 선진국과 같은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하고 싶어했던 국가의 조급증이 국민의 혈세와 꿈을 동시에 날리고 국가의 과학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을 여실히 들어내고 말았다.
그럼 이쯤에서 우리가 과연 당당하게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할 만큼 철저하게 준비 했는지, 또 국내에서 우주 항공기술을 발전 시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보자. 우선 기초교육부터 살펴보면 말문이 막힌다. 말 그대로 국내 우주과학 교육은 ‘초보 수준’이다. 국내의 고등학교 교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연수에서 교사들 조차도 우주과학분야에 대한 지식이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우주과학을 그나마 교과 과정에 포함하고 있는 지구과학2는 선택과목 중 유일하게 10%대 이하의 수강생을 확보하고 있다. 말 그대로 가르칠 사람도 배울 사람도 없는데, 국가는 아직까진 가르칠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국가는 기초 교육이 뒤 받침 되지 않았는데 외국의 기술을 수입해서 국민의 눈을 속이고 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업적’이 전부 인양 ‘우리는 엄청 잘하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의 지원 및 정책에 대해보자. 최근 실시된 ‘과학기술 이슈 토론회’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현 상태와 같은 인프라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포스트 나로호’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국가가 우주개발산업에서 지속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예산, 인력 그리고 조직체계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학자들과 여러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이번 나로호와 같이 1단 대형 액체로켓엔진과 엔진 클러스팅 분야는 기술과 경험이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 정부가 시스템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앞으로 개발될 로켓에서도 다른 국가의 기술을 빌려야 할 실정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결론적으로 ‘단발적이고 정략적인 지원과 투자’가 아니라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부의 지원과 정책적이 배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위와 같이 우리나라의 우주항공분야에 대한 개발의지와 실정 그리고 체계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스페이스 클럽’ 가입은 일종의 허황된 욕심이다. 이름에 맞는 합당한 노력을 하지도 않고 ‘보여주기 식의 타이틀’은 국민의 눈을 속이는 것 이다. 힘든 경제 상황, 혼란스런 정치와 복합적인 사회문제에 지쳐있는 국민에게 권력은 나로호라는 ‘근거없는 자부심’을 이용해 국민의 눈을 속이고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 마음 편치만은 않다. 물론 나로호가 가진 의의나 개발에 대한 노력을 모두 무시하거나 진정성을 해치려는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나로호 개발 이전에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나로호가 우리의 우주항공산업의 현 주소에 맞는 능력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권력의 의도가 순수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순수하지 않은 의도에서 발생된 과학적 업적은 앞의 사례를 살펴 보았을 때 비극의 결말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나로호의 경우에도 발사실패로 국민에게 더 큰 실망을 줌과 동시에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과학 수준을 여실히 들어내고 말았다.
황우석도 리센코도 그리고 나로호도 만약 권력이 작용하지 않은 채 국가의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지원으로 귀결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우리는 BT 분야에서 다른 국가의 추격이 두렵지 않을 만큼 앞서 나갔을 것 이다. 소련의 인민들이 배고픔으로 목숨을 잃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소련의 유전학은 서구와 비슷한 수준으로 함께 발전했을 것이다. 나로호도 발사가 연기되는 것에 조급해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온전한 우리 내부의 기술과 힘으로 개발하려고 힘썼을 것이다. 나로호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많은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우리의 기술로만, 오로지 순수한 의도의 국내 과학발전으로 이루어 졌다면 지금의 의미보다 더 크고 넓은 의미와 상징성을 가졌을 것이다. 나로호는 부분 성공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상 ‘욕심’으로 실패한 프로젝트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실수는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든다. 황우석과 나로호를 통한 반성으로 우리 과학계가 권력이나 정치에 흔들지는 않는 그런 이상적인 학문의 터전이 되었으면 한다.
다시봐도 아쉬운 글이다. 구조도 엉성하고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서 끼워맞춘 티가 확연히 드러난다. 더 잘하라는 의미의 상징적인 장려상. 그냥 이렇게 받는 것이 부끄러워 화가 난다. 그래도 이게 나다. 현실이니까 받아들이자. 아직은 성장 중이니까 그렇게 믿으니까 더 노력해야겠다. 처음 제대로된 타이틀을 걸고 하는 글쓰기 공모전에 내 스스로 준비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래도 좀 아쉽다.
다음 번엔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또 책을 읽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고 글을 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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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정치에 관심이 많은거구나. 너가 글쓴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 '과학전쟁'이라는 책에 있다. 크리스무니 작. 다독하고 좋은글써주세용 ㅋㅋㅋ 그리고 ~일 것이다 표현은 자제하라고 중학교 3학년때 국어선생님한테 지적당했던 기억이 있음. 아무튼 우왕 굳 ㅋㄷㅋㄷ
2009/09/24 01:32니가 중삼때 터득한 걸 난 막 쓰고있다. 이게 내 현실이다.ㅋㅋㅋㅋ
글의 첫부분에서 선덕여왕의 시청률이나 인기비결등이 글과 별 상관 없다는 점과
2009/09/24 20:25전체적으로 확대의 오류를 범한 부분이 실수 이신듯 하고
리센코의 연구가 인민을 굶기게 한 이유, 김봉한의 사태등의 영향 등을
빠뜨린신것 같네요.
글은 유기적인 흐름을 지녀야 한다는 점에서 감점의 요인으로 작용한듯 싶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매우 잘쓴 글인듯 싶네요 ㅎ
좋은 충고 감사합니다. 선덕여왕부분은 요즘의 관심을 이용해서 읽는 사람의 흥미를 유발하고 싶었고 충분히 연결고리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설퍼 보일 수도 있다는 지적은 처음 들어서 신선합니다. 나로호 부분은 제 개인적으로도 글을 쓰면서 확대의 오류인걸 느꼈고 리센코의 연구가 나름 비중이있었는데 좀 더 세부적이지 못했네요. 김봉한은 자료의 부족으로 적지 못 한 점 저도 아쉽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지적 감사드리고 종종 다시 오셔서 평가해주세요~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009/09/24 20:26이 글 보니 니 생각 나더라 ^ ^
2009/11/11 15:53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84052
사실 지나간 사건이려니 하고 있었는데 니 글 읽고 나도 반성하게 됬다는? 뭐 그런 ㅎㅎ
자주 들를께 ~ 우리 다운이 정말 열심히 살구 있구나! ^ㅁ^
음.ㅋ
뭐 열심히 살아.ㅋ
좀 지나간 주제이긴 하지.ㅋㅋㅋ
여튼 고마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