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운'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10/01/18 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2. 2010/01/04 a letter from KOREA (3)
  3. 2010/01/03 부끄러움. (3)
  4. 2009/09/24 황우석과 나로호 그 뒤의 국가. (7)
  5. 2009/08/14 "피지 휴양지? 오지 중 오지였어요"
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내 고민을 들어주는 경국이 형과의 기분 좋은 한잔.
이렇게 좋은 느낌.
어떻게 남겨할지 모를때 나는 자연스럽게 '나만의 글방'으로 옵니다.

아무도 봐 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행복합니다.

이렇게 내 이야기를,
내 마음을,
풀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블로그가 없었다면 저는 얼마나 더 답답해 했을까요.
얼마나 더 힘들어 했을 것이며,
얼마나 더 방황하고 갈피를 잡지 못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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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친구들과의 좋았던 여행.
사진으로만 남기기 아까워 블로그에 글로 남기려하지만
쓰고 싶은 마음만큼 글 재주가 따라 주지않아 한숨만 쉬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때는
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정민이 형에게 사진이 위로가 된다면,
도영이 형에게 피아노가 위로가 된다면,
저에게는 블로그질이 위로가 됩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어 글을 썼습니다.

다시 읽어 보면서,
오늘도 맞춤법을 틀렸고,
내용이 내일 점심 쯤 읽으면
손발이 오그라 들지도 모르지만,
이 순간, 이 벅차고 행복함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남기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나 하나 쌓여가는 '내 방'이 있어.
저는 참 행복합니다.

글을 쓰고 싶습니다.
글을 쓰고 있습니다.
글을 읽고 있습니다.
글을 고치고 있습니다.
글을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글과 함께 하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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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8 01:02 2010/01/18 01:02
EmoTioNal SkeTch. l 2010/01/18 01:02



당신들은 말했습니다.
Bula.
이 한마디면 우린
언제 어디서든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당신들은 가르쳐주었습니다.
Vinaka.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당신들은 남겨줬습니다.
잊지 못할 순간.
세월이 흘러도 가슴 한편,
따뜻하게 데워줄 그런 추억을


많은 것을 배웠기에
또 많은 것을 받았기에.


항상 고맙고, 그립고, 추억합니다.
보고싶습니다.

이번에 온 우리 친구들에게도 따뜻한 추억을 선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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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DDaWooRi
번역 엄현아 정호진
제작&편집 Romantic Fl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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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4 00:19 2010/01/04 00:19
EmoTioNal SkeTch. l 2010/01/0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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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 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 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숭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시작되는 스물다섯

이다운



시작되는 스물다섯.

중년이라는 단어가 아직 실감나지않는 나이.
하지만 벌써 세상에 염증을 느껴버린 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때
적어도 '다른 세상'은 존재할 수 있다는 열정이 강했을때
나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일이 궁금했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잘된 것은 잘되었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시작되는 스물다섯.
뉴스를 보지않고, 신문을 읽지않고,
버스에서 라디오 뉴스를 듣게 될까바
옆사람의 미간을 찌푸릴 음량의 이어폰을 착용하는 나이.
'생각하는 것'이 '부끄러움을 아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어버린 세상.
예전의 열정이 살아날까 두려워
나는 끓어오름을 숨기고
나를 뜨겁게 했던 것들을 피한다.

시작되는 스물다섯.
아직 '차가운 곳'이 많은 세상을 둘러보기 시작한 나이.
누군가를 비난해서
누군가의 잘못을 알리고 고칠 것을 촉구해서
세상이 변하지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나부터 변화를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작되는 스물다섯.
고3때 나의 책상 한쪽 벽을 채웠던 시를 다시 찾아본 나이.
그때엔 시를 보며 변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지금은 변하고 있는 나를 보며 한탄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변하는 것은 용서 할수 있지만 포기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나를 둘러싼 세상이 '틀리거나 혹 잘못된 세상'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분명 좀 더 나은 '다른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는 말자.

내일부터는 이어폰의 음량을 좀 낮춰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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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3 20:50 2010/01/03 20:50
RaTioNaL SkeTch. l 2010/01/03 20:50
2009인문주간을 맞아 한국연구재단 지원으로 개최한 KAIST 글쓰기 공모전에 참가하였다. 준비 과정에서 배운 '과학 글쓰기'에 어려움은 앞으로 글을 계속 쓰길 희망하는 나 자신에게 일단 큰 밑거름이였다. 비록 명예가 있는 장려상은 아니지만, 장려상을 받음으로써 적어도 어느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생각되어 슬프지만은 않다. (사실 상금을 못 받아서 무진장 아쉽다.) 오늘만 글쓸 것도 아니니까 자만도 실망도 하지않고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겠다. 원문을 블로그 버전으로 개정해서 올리겠다.

                                        BLOG main image


최근 방영되고 있는 사극 선덕여왕의 인기가 회를 거듭할수록 더해지고 있다. 시청률 40%를 뛰어넘은 선덕여왕의 매력은 무엇일까? 여태껏 우리의 사극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신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특이함을 가졌으며 연기자들의 적절한 연기 등의 요인을 들 수 있겠다. 그런 많은 요소들 중에서도 당연 으뜸이라고 할만한 것은 역시 미실과 덕만의 갈등 구조이다. 덕만의 출생 비밀이 밝혀진 뒤 일식에 관한 심리전에서 덕만 공주가 미실을 완벽하게 속임으로써 드라마상에서 둘 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들어났고 그 것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일식이 발생하는 날을 정확하게 맞춰서 자신의 지위를 입증한 덕만 공주는 미실과는 달리 격물이 정치에 이용되는 것은 올바르지 못한 현상이라고 지적하며 첨성대를 건립을 주장하고 격물과 정치의 분리를 시도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도 표현이 잘 되고 있지만 책력을 알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삼국시대에서는 엄청난 권력이었다. 책력이란 현재의 천문과학의 일종으로 현재에는 당연한 것정도로 다루어지고 있지만 삼국시대만 하더라도 국민들은 무속 신 또는 부처님에 의해 결정되는 신기한 현상으로 여겨왔다. 그렇기 때문에 덕만 공주의 라이벌 격인 미실도 라이벌만큼의 위치로 성장하기 위해 책력을 이용하였고 덕만 공주 또한 책력을 통해 일식을 예상함으로 자신의 공주지위를 찾게 되었다. 이처럼 격물, 즉 과학적인 사실이나 이론이 정치와 권력에 이용되었을 때 과학 그 자체의 순수성은 왜곡되고 악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드라마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덕만 공주는 악용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 백성들과 천문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공유하고 백성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보고 있다. 하지만 그 연결고리라는 것이 쉽사리 끊어지지 않는다. 선덕여왕의 시대는 천년 이상이라는 세월 전에 막을 내렸지만 격물의 악용은 지금도 우리사회에 만연한 문제점이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란이 악용의 가장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 ‘황우석 어페어라고 불릴 만큼 범 국민적 이슈가 되었던 논문 조작사건은 당시 국가 전체가 혼란스러울 만큼 큰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 악용 했음을 잘 방증해주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느 과학자 한 명의 논문 조작 사건일 뿐이다. 여느 나라에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면 과학계 스스로의 정화 시스템에서 해결 될만한 일이 국가적인 혼란을 야기한 이유는 무엇일까? 황우석 박사 자체가 과학자를 뛰어넘어 정부와 언론이 인위적으로 조작한 국가의 영웅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황우석이라는 존재는 90년대 후반에만 해도 복제 동물분야의 전문가정도로 취급 받던 생명공학에서도 주변인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복제 소 영롱이의 성공으로 그는 정부와 언론의 관심을 동시에 받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웅화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한다. 이어서 출범한 참여정부 때에도 정부 및 여당 그리고 국민의 무조건적인 지지와 지원으로 마침내 배아줄기세포까지 전문 분야확장을 성공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는 그의 성공으로 지역과 계층, 정당과 이념 그리고 남녀노소의 구분을 뛰어넘는 국민적 영웅이 된다. 그렇다면 권력은 왜 그를 택했을까? 이유인 즉 슨 아이엠에프 사태 이후 엄청난 좌절감에 빠진 국민에게 황우석의 존재는 미래 한국이 나아갈 길을 정확히 제시해주는 구세주와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의 무능함을 과학자의 영웅화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어리석으면서도 꽤나 효과적이었던 해결책이다.

하지만 이러한 무차별적인 황우석에 대한 맹신으로 인해 황우석의 연구는 비판은 없고 칭찬만을 받는, 검증단계조차 거치지 않고 언론에 먼저 알려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국가의 개입은 연구 업적이 상당부분 왜곡 또는 부풀려지는 것을 조장함으로써 과학계의 내부검증을 거치지 못하게 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그 약점은 상처로 커지게 되었고 치료되지 못한 상처는 곪아서 터져 한 때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지게 한 황우석 사태를 초래하게 되었다. ‘우리 모두의 영웅이었던 황우석 박사는 현재 재판에서 징역 4년을 구형 받고 연구도 국내에서 할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이다. 결국 국가의 개입이 있었지만 잘못의 과학자 개인의 몫으로만 돌아가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이러한 과학에 대한 권력의 작용이 우리나라에 국한 되지만은 않았다. ‘황우석 사태가 막 일어났을 때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했던 외국의 사례를 떠올리며 자성의 시간을 가졌던 것이 기억이 난다. 간단한 예로는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의 생체실험을 들 수가 있다. 권력으로 악용된 과학이 어디까지 독해질 수 있나를 보여주는 끔찍한 일들이었고 그 끔찍한 피해를 우리는 겪기까지 했었다. 좀더 구체적인 상황을 찾아보자면 소련의 사회주의 과학의 영웅이었던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이하 리센코)와 북한에서 주체과학의 영웅’으로 대접받던 김봉한이 있다.
 



리센코는 스탈린 시대의 소련 농 생물학자로써 멘델의 유전학설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딴 소위 리센코주의를 주창한 사람이다. ‘리센코주의의 내용을 살펴보면 개인적으로 해석할 때에는 용불용설과 비슷한 맥락이 있는 듯하다. 주요 골자는 유전자라는 입자적인 것만으로 유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환경조건을 변화 시킴으로써 생물체 내의 물질대사 형을 변화시키고 이것이 유전성의 변경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획득 형질론이다. 감봉한의 경우는 1960년대 초에 원자물리학적 방법으로 한의학과 관련된 경락의 존재를 증명한 이른바 산알 이론을 펼쳤다.

특히 리센코 학설의 후유증은 대단히 컸다. 먼저 과정을 살펴보면 서구와 반대되고 독자적인 것을 추구하기 원했던 당의 공식채택을 받음으로써 과학적 증명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소비에트만의 진리로 받아들여 졌다. 이 여파로 소련 내의 유전학 관련 연구가 중단되었고 멘델과 모건의 유전학을 고수했던 학자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정치 수용소로 들어가게 되었다. 훗날 리센코주의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어 폐기되었지만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지켜져 온 탓에 소련의 급진과학운동이 서구에 비해 10년이나 소강상태에 접어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한 농업 실패로 수많은 인민이 굶어 죽는 대참사가 발생하였다.

그래도 우리의 경우에는 리센코주의의 피해와는 달리 먹고 사는 것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좀 덜해서 불행 중 다행이라 할만 하다. 물론 미래 핵심 산업인 BT 관련 될 성 싶은 떡잎을 잃긴 했지만 한번은 실수라고 치며 넘어 갈 수는 있다. 그냥 넘어간 것도 아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자기비판도 했고 반성도 했다. 또 똑똑한 사람들은 위에서 말한 외국의 사례까지 읊어가며 우리 다시는 이런 바보 같은 짓 하지 맙시다.’라며 공공연히 떠들었다. 그런데 황우석 사태가 채 해결도 되지 않은 이 시점에 나로호라는 새로운 기계가 국민들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혹자는 나로호 개발과정에는 황우석과 같은 영웅 만들기 과정이 없지 않냐?’ 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다. 사람은 없다. 사람은 없지만 그 자리를 나로호라는 우주 발사체가 대신하고 있다. 과학자 자체를 권력에 이용하는 것은 한 번 당했으니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진 않지만 결국 그 대상이 사람에서 사물로 이동한 격 밖에 되지 않는다. 과자 봉지는 좀 더 화려해졌는데 과자 맛은 결국 이전이랑 달라진 게 없다.



총 개발비로 5000억 원이 투여된 나로호의 개발은 어마어마한 개발비와는 어울리지 않게 우리만의 자체 기술이 아니다. 언론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 발사체라는 수식어로 우리의 뛰어난 우주 항공기술을 뽐내려고 노력하지만 1단 엔진은 기술력의 부족으로 러시아가 제작했다. 처음부터 우리에게 메이드 인 코리아의 우주 발사체는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팔과 다리가 따로 놀고 1, 2단 엔진이 한번도 함께 실험하지 않은 발사체의 실패는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국가는 매번 문제점이 발생해 발사 일이 연기되는 와중에 도 확실한 원인 규명을 하기보다는 어설픈 변명과 곧 발사할 것이라는 말로 국민들의 불안을 달랬다. 하루라도 빨리 선진국과 같은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하고 싶어했던 국가의 조급증이 국민의 혈세와 꿈을 동시에 날리고 국가의 과학에 대한 낮은 인식 수준을 여실히 들어내고 말았다.

그럼 이쯤에서 우리가 과연 당당하게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할 만큼 철저하게 준비 했는지, 또 국내에서 우주 항공기술을 발전 시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왔고 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보자. 우선 기초교육부터 살펴보면 말문이 막힌다. 말 그대로 국내 우주과학 교육은 초보 수준이다. 국내의 고등학교 교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연수에서 교사들 조차도 우주과학분야에 대한 지식이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우주과학을 그나마 교과 과정에 포함하고 있는 지구과학2는 선택과목 중 유일하게 10%대 이하의 수강생을 확보하고 있다. 그대로 가르칠 사람도 배울 사람도 없는데, 국가는 아직까진 가르칠 생각도 없는 것 같다. 국가는 기초 교육이 뒤 받침 되지 않았는데 외국의 기술을 수입해서 국민의 눈을 속이고 있다. 그러고는 자신들의 업적이 전부 인양 우리는 엄청 잘하고 있다며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의 지원 및 정책에 대해보자. 최근 실시된 과학기술 이슈 토론회에서 나온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현 상태와 같은 인프라구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포스트 나로호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국가가 우주개발산업에서 지속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예산, 인력 그리고 조직체계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학자들과 여러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이번 나로호와 같이 1단 대형 액체로켓엔진과 엔진 클러스팅 분야는 기술과 경험이 모두 부족한 상황이라 정부가 시스템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앞으로 개발될 로켓에서도 다른 국가의 기술을 빌려야 할 실정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결론적으로 단발적이고 정략적인 지원과 투자가 아니라 근본적이고 지속 가능한 정부의 지원과 정책적이 배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위와 같이 우리나라의 우주항공분야에 대한 개발의지와 실정 그리고 체계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스페이스 클럽가입은 일종의 허황된 욕심이다. 이름에 맞는 합당한 노력을 하지도 않고 보여주기 식의 타이틀은 국민의 눈을 속이는 것 이다. 힘든 경제 상황, 혼란스런 정치와 복합적인 사회문제에 지쳐있는 국민에게 권력은 나로호라는 근거없는 자부심을 이용해 국민의 눈을 속이고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아 마음 편치만은 않다. 물론 나로호가 가진 의의나 개발에 대한 노력을 모두 무시하거나 진정성을 해치려는 의도는 아니다. 하지만 정부가 나로호 개발 이전에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그리고 나로호가 우리의 우주항공산업의 현 주소에 맞는 능력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권력의 의도가 순수하지만은 않다고 본다. 순수하지 않은 의도에서 발생된 과학적 업적은 앞의 사례를 살펴 보았을 때 비극의 결말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나로호의 경우에도 발사실패로 국민에게 더 큰 실망을 줌과 동시에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과학 수준을 여실히 들어내고 말았다.


황우석도 리센코도 그리고 나로호도 만약 권력이 작용하지 않은 채 국가의 과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 지원으로 귀결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우리는 BT 분야에서 다른 국가의 추격이 두렵지 않을 만큼 앞서 나갔을 것 이다. 소련의 인민들이 배고픔으로 목숨을 잃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며 소련의 유전학은 서구와 비슷한 수준으로 함께 발전했을 것이다. 나로호도 발사가 연기되는 것에 조급해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온전한 우리 내부의 기술과 힘으로 개발하려고 힘썼을 것이다. 나로호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많은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우리의 기술로만, 오로지 순수한 의도의 국내 과학발전으로 이루어 졌다면 지금의 의미보다 더 크고 넓은 의미와 상징성을 가졌을 것이다. 나로호는 부분 성공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상 욕심으로 실패한 프로젝트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실수는 사람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반성하게 만든다. 황우석과 나로호를 통한 반성으로 우리 과학계가 권력이나 정치에 흔들지는 않는 그런 이상적인 학문의 터전이 되었으면 한다.



다시봐도 아쉬운 글이다. 구조도 엉성하고 글자 수를 맞추기 위해서 끼워맞춘 티가 확연히 드러난다. 더 잘하라는 의미의 상징적인 장려상. 그냥 이렇게 받는 것이 부끄러워 화가 난다. 그래도 이게 나다. 현실이니까 받아들이자. 아직은 성장 중이니까 그렇게 믿으니까 더 노력해야겠다. 처음 제대로된 타이틀을 걸고 하는 글쓰기 공모전에 내 스스로 준비했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래도 좀 아쉽다.
다음 번엔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또 책을 읽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들고 글을 쓰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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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4 00:24 2009/09/24 00:24
RaTioNaL SkeTch. l 2009/09/24 00:24


 

"피지 휴양지? 오지 중 오지였어요"

 

고대 사회 봉사단 3박4일 '사랑의 집짓기'
나세비투 도착하니 자재도 없고 곡괭이뿐
비지땀 흘려도 원주민들 밝은 미소에 행복
서편제 영화 같이 보며 우리문화 알리기도

지난 11일 오후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의 숲속 오지 마을인 '나세비투'.붉은 티셔츠를 입은 한국 젊은이들이 치는 북과 꽹과리 소리가 낯선 땅에 울려 퍼졌다. 원주민들은 흥에 겨워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며 장단을 맞췄다.

40여명이 자리한 객석에서는 연방 "비나까"(피지어로 '고맙다'는 뜻)가 터져 나왔다. 사물놀이 공연에 이어 주민들이 답례로 전통 노래를 부르는 동안, 한국 젊은이들과 주민들이 어우러져 한바탕 춤판이 벌어졌다.

붉은 티셔츠를 맞춰 입은 젊은이들은 고려대 사회봉사단 단원들. 단장인 이기수 고려대 총장을 포함해 교직원 6명과 학생 17명으로 구성된 단원들이 이곳에서 8일부터 11일까지 3박 4일 동안 펼친 집짓기 봉사 활동을 마무리하는 원주민과의 '작별 파티'였다.

촌장인 일리아사(46)씨는 귀한 손님에게만 대접하는 '카바'음료를 봉사단원 모두에게 돌렸고, 마을의 최고령 어른인 케사(86)씨는 단원들을 향해 머리 숙여 인사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봉사활동 기간 내내 예상치 못한 난관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봉사단 부단장 김한겸 학생처장의 얼굴에도 그제서야 엷은 미소가 피었다.

지난해 12월 출범 후 무료급식, 연탄배달 등 활동을 펼친 고려대 사회봉사단이 빈곤층에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 운동에도 동참키로 하고 첫 집짓기 해외 봉사지로 택한 곳이 이곳 피지다.

이 멀고 먼 남태평양 섬의 오지를 택한 까닭은 무엇일까. 김 처장은 "국내에서는 낭만의 휴양지로만 알고 있는 피지가 실은 인구의 25%가 절대 빈곤층인 가난한 나라라는 얘기를 듣고 이곳 원주민 마을에 집을 지어주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300여개의 작은 섬들엔 각국의 리조트 시설이 들어 서 있지만, 80여만명 정도가 거주하는 경상도 크기의 본토 섬은 휴양시설을 찾기 어려운 가난한 원주민의 땅이다. 이곳에서 한국인들이 집짓기 봉사에 나선 것도 처음이다.

봉사활동은 짐작한 것보다 훨씬 힘들고 험난했다. '오지 봉사'를 예상하긴 했으나, 나세비투는 상상 이상의 오지였다. 6일 서울을 출발해 비행기로 10시간 걸려 피지의 난디 공항에 내린 뒤 다시 낡은 버스로 9시간을 달려 8일 오전 나세비투에 도착했다.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양철과 나무로 지은 집 9채에 주민 80여명이 모여 사는데, 주변은 온통 코코넛과 바나나 나무들 뿐이었다. 단원들 입에선 "이 정도일 줄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집 짓는 일도 순탄치 않았다. 피지 현지의 해비타트 지부로부터 건축 도구와 자재를 지원받기로 돼 있었으나, 현지에서 준비한 도구라곤 삽과 곡괭이 몇 자루가 전부였다. 봉사단은 첫 날 땅파기를 시작으로 기초 공사에 나섰지만, 도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작업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36㎡ 넓이의 터에 기둥을 세울 16개의 구멍을 파느라 학생들은 비지땀을 흘려가며 고전했다. 자재 공급도 원활하지 않았다. 어렵게 벽과 지붕에 쓰일 자재가 도착하면 시멘트 공장이 문을 닫아 시멘트를 구할 수 없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김 처장은 "현지 지부 사정이 어려워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다"며 "다른 국가의 봉사단이 대충 '투어' 수준으로 간간히 오다가, 우리가 진짜 집을 지으려고 하니까 현지 관계자들도 당혹스러워했다"고 말했다. 결국 집 한 채를 완공하려던 계획은 아쉽게 접고 기초 공사만 마무리한 채 나머지 공사는 피지 해비타트의 몫으로 남겨뒀다.

하지만 마을과의 문화교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학생들은 봉사에 앞서 지난달부터 매주 1,2차례 3~4시간씩 모임을 갖고 피지에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태권도, 사물놀이, 과학실험, 영화상영 등을 준비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봉사단은 과학원리를 이용한 물로켓을 만들어 아이들의 관심을 끌었고 영화 '서편제'를 상영해 여성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마을 앞마당에 설치한 농구 골대에 남자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즉석사진기도 주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최고령 케사 할아버지는 "난생 처음 사진을 갖게 됐다"며 흐뭇해 했다.

봉사 하러 간 것이지만, 더 많은 것을 얻은 쪽은 학생들이다. 주민들이 "불라"(안녕)와 "비나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을 의아해하는 학생들에게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는 낯선 사람을 만나도 '불라'라고 외치면 곧 친구가 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행복하기 때문에 자꾸 고맙다고 하는 것이지요."

단원 이다운(23)씨는 "여기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김현정(23ㆍ여)씨는 "다양한 삶이 있고 각자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성현(23)씨는 "집을 완성하지 못해 아쉽지만 마음 속에 집 한 채를 지은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11일 오후 마을을 떠나는 봉사단의 버스에 오른 촌장 일리아사는 서툰 한국말로 "여러분, 다시 오세요"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박수로 답하자, 마을 사람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꼬레아"를 외쳤다.

피지=강희경 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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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처음으로 신문에 이름이 올랐다. 그런데 멘트 수준이 참 그렇다. 너스레라는 단어가 아주 맘에 쏙 든다. 여튼 희경이 형이 내 이름을 올려줘서 고맙다. 봉사활동이란 것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그 것을 통해서 많은 것을 얻은 의미있는 방학이였다. 이 의미를 어떻게 발전시켜할지 아직 고민 중이긴 하지만 지금까진 난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 하고 싶다.
근데 기사가 참 객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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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4 01:24 2009/08/14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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